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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국물] (4)변산 백합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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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국물] (4)변산 백합탕

입력
2002.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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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白蛤)은 이름으로 따지면 흰조개이다. 그런데 겉보기에는 희지 않다. 암갈색이다.희미한 흰색 줄이 한두 줄 그어져 있을 뿐이다. 왜 백합일까. 속살이 희기 때문이다. 백합꽃보다 희다.

흰 속살은 또한 부드럽다. 갓난 아이의 살갗 같다. 부드러운 살을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상대적으로 껍데기는 단단하고 두껍다.

우람한 느낌까지 든다. 백합의 천적은 그 껍질을 깨기 위해 무진 애를 쓸 것이다.

그러나 노력의 대가는 확실한 것. 향기와 맛과 육질에서 으뜸이다. 예로부터 임금님께 바쳐지던 진상품이었다. 단연 조개의 귀족이다.

대부분 조개탕과 마찬가지로 백합탕은 천연 건강식품이다. 콜레스테롤을 제거하는 타우린 성분이 많아 만성적인 피로를 푸는데 그만이다.

한의학적으로는 음기를 보충하고 혈액의 생성을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몸에 열을 내려주기 때문에 여드름이 많이 나는 젊은이들에게도 좋다고 소문이 나있다.

백합탕은 간단한 음식이다. 백합과 매운 고추, 파 그리고 간을 맞추는 소금이 전부이다. 해감시킨 대합을 냄비에 넣고 물을 부어 끓인다. 이 때 냄비 속은 암갈색 세상이다.

끓기 시작하면 냄비 뚜껑을 연다. 신기하다. 냄비 속은 온통 하얀 세상으로 바뀐다.

입을 연 백합들이 껍데기의 바깥 부분을 모두 냄비 바닥에 붙이고 흰색 살을 위로 향하고 있다. 하얀 국물에 매운 고추와 파를 띄운다.

탕에 들어간 재료들은 모두 각자의 맛을 낸다. 조갯국물의 맛은 조개의 살결처럼 부드럽다. 부드러움에 질투하는 것일까. 고추의 매운 맛이 가시처럼 혀에 박힌다.

은근히 퍼지는 파의 향긋함은 조개와 고추의 힘겨루기를 말리는 듯하다. 식도를 타고 내려갈 때에도, 뱃속에 머물 때에도 맛의 싸움은 이어진다.

그래서 맑은 국물을 마시면서 땀을 흘린다. 싸움이 진정되면서 뱃속도 편안해진다. 먹기 이전보다 더 편해진다. 해장용으로 확실한 선택이다.

백합은 내해의 조간대부터 수심 20㎙ 이하의 모래나 뻘에 산다. 가장 훌륭한 서식환경을 가진 곳이 전북 부안의 변산반도 인근이다.

특히 계화도의 백합을 최고로 친다. 끝없이 펼쳐진 갯벌에 백합밭이 이어져 있다. 비싼 조개여서 예로부터 인근의 갯마을은 소문난 부자였다.

백합탕을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까. 새만금 간척지를 떠올리며 드는 걱정이다.

백합밭이 몽땅 논으로 바뀔 터이다. 다른 갯벌에서 다른 백합밭이 또 조성되겠지만 원류의 맛을 흉내내지는 못할 것이다. ‘위기의 국물’이다.

글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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