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 성추행이 미국의 가톨릭교회를 심각한 재정난으로 몰아넣고 있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합의금을 쏟아부어야 하는데다 성추행 파문으로 헌금과 기부금 등이 뚝 끊기면서 교회살림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성추행만큼이나 깊이 숨겨져왔던 교회 재정의 폐쇄성도 도마에 올랐다.비즈니스 위크는 최근 호(15일자)에서 성에 관한 베일이 벗겨지면서 가톨릭교회의 재정적인 문제도 함께 노출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1985년 루이지애나에서 사제의 아동 성추행 사건이 폭로된 이후 지금까지 미 전역에서 비슷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가톨릭교회가 지출한 합의보상금은 무려 10억 달러(약 1조 3,000억 원)이다.
100명이 넘는 사제 성추행 피해자를 대변해 오고 있는 보스톤의 로데릭 맥레이시 변호사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앞으로 수십억 달러의 돈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성추행에 따른 도덕성 실추로 가톨릭교회를 지탱해 왔던 재정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헌금을 내는 신자들 표정이 밝지가 않다. 지난달 27일 갤럽 조사에 따르면 가톨릭 신자의 3명 중 1명꼴(30%)로 헌금 액수를 줄일 생각인 것으로 나타났다.
교회 예산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기부금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제2의 기부금 제공자인 ‘가톨릭 자선회’는 15% 기부금을 삭감하고 몇몇 자선 프로그램에서도 손을 뗄 계획이다. 여기에 교구와 학교에서 사실상 자원봉사를 하던 신부와 수녀를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할 것으로 우려된다. 성추행 파문 이후 훨씬 엄격해진 규율을 따르면서 봉사하는 데 만족하겠다는 성직자를 찾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재정파탄을 면하기 위한 가톨릭교회의 자구노력이 다급한 실정이다. 미국의 산타페 대교구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제기된 187건의 소송을 해결하기 위해 안 쓰는 부동산과 교회시설 일부를 처분했는데도 6년째 적자다.
재정난은 학교와 병원, 자선단체 등을 운영하는 가톨릭교회의 사회참여 프로그램에 적지않은 타격을 주고 있다. 보스턴 대교구의 데이비드 스미스 재정담당자는 “교회 재정난이 우리 도시 전체의 아이들을 새로운 차원의 희생자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교회 재정의 투명성 확보가 급선무라고 지적하고 있다. 자기가 낸 돈이 성추행 보상금으로 쓰이는지 ‘책상’을 사는 데 들어가는지 알 수 있도록 회계장부를 공개해야 다시 돈이 들어올 것이라는 주문이다.
김병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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