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스스로를 “정치적이지는 못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정치인들은 모든 발언이 철저히 계산된 것이지만 자신은 어느 자리를 막론하고 소신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했다.‘들쥐떼론’‘지네발론’ 등 잇단 파격적인 소신발언으로 주목을 끌고 있는 박용성(朴容晟ㆍ62)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만났다.
두산중공업회장, IOC위원, 국제유도연맹회장 등 남들은 하나도 벅찬 직책들을 겸임하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기업인’으로 불리는 그는 정열적인 활동만큼이나 할 말이 많다.
“농업 보호정책은 보릿고개 멘탈리티, 강성 노조는 전태일 멘탈리티의 잔재”“정보기술(IT), 생명기술(BT)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소리” 등 시장경제와 전통산업 옹호론의 입장에서 여전히 민감한 발언을 쏟아냈다.
/대담= 배정근 경제부장
-직함이 90여 가지나 된다고 하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자리는.
“상의 회장이기 때문에 당연직으로 맡은 직함이 많아서 그렇다. 아무래도 가장 보람을 느끼는 것은 이 자리(상의 회장)다. 돈을 벌어 주는 것은 회사(두산중공업 회장)고, 명예는 IOC 위원이다.”
-발전 노조와 민노총의 파업이 가까스로 타결됐는데.
“당연한 결과다. 민노총이 왜 그렇게 초강수를 뒀는지 이해할 수 없다. 민영화 철회는 정부에게 항복하라는 것이었는데 질 수 밖에 없는 게임을 시작한 것이다. (이어 파업에 대한 평소 불만을 쏟아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건지 모르겠다.
분규 사업장은 연봉이 4,000만~5,000만원짜리다. 진짜 최저 생계비 사업장은 파업을 하지 않는다. 노조활동이 너무 정치적이다. 그런 주장은 국회를 통해야지 힘으로 해서는 안 된다. ‘떼 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정치 투쟁하려면 노동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인가.
“이제는 과거와 달리 정치적 다양한 스펙트럼을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은가. 아니면 노동운동을 하다가 국회에 진출한 사람을 활용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발전 부문 민영화는 잘 될 것으로 보는가.
“정부 의지에 달렸다. 발전소를 사는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산다. 예를 들어 10억 달러를 투자한 사람은 발전기를 돌려서 그 이상 수익을 낼 수 있는지 사전에 계산할 것이다. 정부는 투자 가치가 있을 만큼의 수익률을 보장해줘야 한다.”
-그동안 민감한 발언을 많이 해 왔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본받지 말라고 했는데‥
“우리가 겪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말라는 뜻이다. 우리는 일본을 베끼는데 상당한 시일이 걸렸는데 중국은 훨씬 빨리 베낀다. 우리는 민주화 대가를 10여년간 치르고 있지 않은가. 중국은 그 기간을 건너뛰어야 한다는 의미인데,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국경제의 급성장을 두고 기회론과 위협론이 팽팽히 맞선다. 일본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는 중국을 블랙홀로 표현할 만큼 위협적인 존재로 평가했는데.
“최근 국내 한 신발 공장을 방문하고 놀랐다. 디자인만 보고 며칠 만에 샘플을 제작해 냈다. 이런 기술은 우리나라 밖에 없다. 이게 바로 지식산업 아니냐. 중국이 커지더라도 얼마든지 경쟁력 있는 분야를 굴뚝산업에서 발굴해 낼 수 있다. (그는 평소 소신대로 굴뚝산업 찬양론을 펼쳤다.)
굴뚝산업을 사양산업이라고만 하지 마라. 아직까지 우리가 먹고 살 것은 굴뚝산업 뿐이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데 얼마나 천문학적 돈이 들어가는지 아는가.
그렇게 비아그라를 만들고 보안프로그램을 개발한다고 얼마나 수출할 수 있겠는가.IT, BT는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다. 여기에 4,600만명 국민의 목을 내맡길 수는 없지 않는가.”
-그래도 정보기술(IT) 산업은 미래산업이 아닌가. 전통산업에서는 경쟁 입지가 줄어드는 만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IT산업이 불필요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새로운 기술을 전통산업에 접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순수 ‘닷컴기업’으로 누가 돈을 벌었나. 뻔히 갈 길이 보이는데 헛된 투자를 해서는 안 된다. IT산업에서 마이크로소프트나 휴렛팩커드를 따라잡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다.”
-결국 우리 시장을 외국에 모두 개방해야 한다는 얘기처럼 들리는데.
“우리 경제를 망친 것이 중소기업 보호정책이다. 농업 역시 마찬가지다. 농업을 국민 감정으로만 보호하고 있다. 보릿고개 멘탈리티로 농업을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노사문제에 대한 인식도 전태일 멘탈리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뉴라운드를 맞으면 농민은 더 피폐해질 수 있다.”
-선거 쪽으로 얘기를 돌려보자. 재계에서 대선 후보들의 정책을 평가한다고 해놓고 단체간에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대선 후보 정책을 평가한다는 것은 원칙적, 선언적 의미였다. 어떤 후보가 공기업 민영화는 절대 반대한다고 하면 그를 지지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공약을 하나하나 평가한다는 얘기는 아니었고 이런 큰 원칙에서 발표한 것이었다.”
-음성적인 정치자금 지원을 거부키로 했는데 현실성이 있나.
“언론에서 믿지 않는데 음성 정치자금은 거의 없어졌다. 그건 김영삼대통령의 큰 공이다. 정치하는 사람들도 요즘은 도와달라고 하면서 후원회 번호부터 알려준다. 정치권에 바라는 것은 선거 공영제다. 적어도 대선 때부터는 옥외집회를 없애는 등 공영제가 이뤄져야 한다.”
-정부의 돈으로 선거를 치르는 일반적인 선거공영제 의미와는 좀 다른 것 같은데.
“돈이 안 드는 선거를 말하는 것이다. 선거 때 옥외집회를 하면 수천명, 수만명이 모이지 않나. TV 토론도 활성화해 있는 만큼 쓸데 없이 돈을 쓰며 세를 과시하는 것은 없어져야 한다.”
-선거 정국을 틈타 재계가 이기주의적 건의를 쏟아내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기업 권익을 위한 정상적인 활동이다. 외국에서는 용도 폐기된 집단소송제를 왜 이제 와서 끄집어 내는가. 보이지 않는 시장의 힘이 가장 큰데 왜 보이는 손으로 억제하려는지 모르겠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에 대해 참여연대가 번번이 발목을 잡는데 최대 주주인 외국인들은 이를 모르겠나.
만약 정말 문제가 있다면 주주가 나서서 심판할 것이다. 진짜 문제 있는 기업은 감시하지 않고 삼성전자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결국 언론의 주목을 받기 위한 것 아닌가. 좀 더 솔직해 졌으면 좋겠다.”
-시민단체가 소액주주 권리보호나 기업 투명성 증대에 기여한 것은 사실 아닌가.
“물론 인정한다. 단지 너무 지나치다는 얘기다. 왜 항상 특정기업만 문제 삼는가. 내가 보기에는 그 특정기업이 우리나라의 가장 모범생이다.”
●약력
▲서울 ▲경기고ㆍ서울대 경제학ㆍ미 뉴욕대 경영대학원 ▲상업은행 행원 ▲한국투자금융 상무 ▲동양맥주 사장 ▲두산그룹 부회장 겸 두산중공업 대표이사 회장(현) ▲국제유도연맹 회장(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현)
정리=이영태기자
ytlee@hk.co.kr
■박용성 회장 발언록
박용성 회장의 발언이 때마다 주목을 끄는 이유는 주위 눈치를 보지 않는 소신 때문이기도 하지만 적절한 비유를 담은 독특한 화법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그의 ‘어록’을 정리해본다.
“중국은 고도 성장 후 추락한 일본의 성장 모델을 답습한 한국을 본받지 말고 기업가치를 중시하는 서구식 경영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 3월29일, 중국 한 대학 초청 강연
“첨단병을 앓고 있는 한국 기업들은 들쥐떼 근성을 갖고 있다. 어떤 사업이 좋다고 하면 충분한 검토 없이 한꺼번에 몰려든다.”
● 3월12일, 포스코 초청 특강
“한국은 이제 농업 개방을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를 공개적으로 논의해 제조업과 농업이 공생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 3월8일, 기자간담회
“노는 제도를 국제기준으로 하려면, 일하는 제도 역시 국제기준으로 개선해야 하는 것 아닌가.”
● 2월22일, 노동부장관 초청 간담회서 주5일근무제 도입과 관련해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기업인은 나무에서 떨어지면 사람은커녕 원숭이도 못된다.”
● 2001년11월5일, 기자간담회서 정부정책이 기업인에게 너무 불리하다며
“문어발 경영은 문제가 있지만 핵심역량이 있다면 (문어보다) 훨씬 다리가 많은 지네발 경영을 해도 괜찮다.”
● 2001년6월29일, 관훈클럽 초청 간담회
“속된 말로 하면 ‘왕(王) 사쿠라’라는 욕을 먹더라도 상의가 재계의 여당 역할을 해야 경제가 안정되고 발전한다.”
● 2001년5월26일, 기자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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