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볼 때 강대국이나 제국은 압도적인 ‘힘의 투사(投射) 능력’을 바탕으로 세계질서를 형성하고 유지했다. 20세기 중반 이후 팍스 아메리카나가 지탱되고 있는 핵심적인 요인 역시 미국 군사력의 복합적인 우위라고 볼 수 있다.물론 군사력만으로 최강국으로서의 입지를 고수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옛 소련이 대표적 사례라고 여겨진다. 옛 소련은 냉전 당시 미국에 버금가는 전략 핵무기와 재래식 전력, 최첨단 기술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복합적인 경제능력, 과학기술 개발 및 응용체계, 그리고 이를 보완하는 미국 우방국들의 국력 등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군사전략의 차원에서 볼 때 볼 때 옛 소련의 태생적 한계는 통합적 군사력 운용 시스템의 열세였다. 스페인 포루투갈 영국이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국제질서를 주도했던 기본적 원인은 통합적인 국력을 원하는 곳에서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단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힘을 투사할 수 있는 최첨단 능력은 해군력이었다.
21세기 중반까지의 포괄적인 전략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주와 사이버 공간에서의 군사력도 겸비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미국과 경쟁할 세력은 현재 보이지 않고 있다. 현대전의 특징 중 하나인 연합작전 능력까지 감안하면 군사적 우위는 경이로운 수준이다.
최근 확정된 2003년도 미국 국방예산은 3,961억 달러로 러시아의 6배에 달한다. 미국이 불량국가로 지목한 북한 쿠바 이란 이라크 리비아 수단 시리아 등 7개국 국방비 총액과 비교하면 무려 26배에 이른다.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 회원국과 러시아 중국 일본 인도 호주 그리고 한국의 국방비를 모두 합쳐도 약 3,220억 달러로 미국보다 740억 달러가 적다. 인적자원, 훈련강도, 무기체계, 실전경험 등 변수에서마저 미국은 비교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인류역사상 어떤 제국도 21세기 초 미국과 같은 군사 우위를 보유한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떤 이유 때문에 전례 없는 규모의 군사력을 확보하고 있는가. 미국의 신 군사전략은 다음과 요인들에 의해 촉진되고 있다고 본다.
첫째 탈냉전 이후 기본적인 군사전략이 ‘위협’ 중심 국방기획에서 ‘능력’ 중심 국방기획으로 전환하고 있다. 냉전 당시 미국은 유럽에서 소련의 군사적 위협을 차단하고,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지하며 중동에서 전쟁을 예방한다는 기본적인 군사전략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옛 소련 붕괴 후에는 전략을 전면 수정했다. 2002년 1월 미 국방부가 의회에 제출한 ‘핵전력태세 검토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 NPR)’에 따르면 미국의 핵 전략은 공격적 억지 개념으로 전환했다. 미국에 대한 직접적 공격이나 주요 우방국이 군사적 공격을 받을 경우 핵무기나 고성능 재래식 무기를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억지 전략은 대량 살상무기, 탄도 미사일, 생화학 무기 등과 같은 비대칭적 군사위협(Asymmetrical Military Threat)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비대칭적 위협은 압도적인 전력을 가진 국가에 맞서 다른 국가나, 테러집단 등 하부조직이 비전통적 수단으로 공격하는 것을 뜻한다.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9ㆍ11 테러 이전부터 미국이 이 같은 위협의 표적이 되고 있음을 경고해 왔다. 냉전 당시 미국의 군사전략이 핵전쟁을 예방하기 위한 균형 유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탈냉전 이후, 특히 9ㆍ11 사태 이후에는 다양한 비대칭적 군사적 위협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탄력적 군사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둘째는 전쟁 개념의 원천적 변화이다. 인공위성을 중심으로 한 실시간 전략전술 정보 시스템, 최첨단 통신망에 의한 통합적 지휘통제 체제, 우주항공력을 극대화하는 종합적인 공군력과 다양한 원격조정 무기체계는 새로운 전쟁 수행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있다.
미국은 이 변화의 중심에 있고, 앞으로도 중심이고자 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은 무인 전투기와 정찰기, 다양한 정밀 미사일과 폭탄, 고도로 훈련된 특수전 요원 등을 중심으로 작전을 전개해 탈레반 정권과 알 카에다 조직을 와해시켰다.
특히 전사상 처음으로 소규모 군사작전 상황까지 실시간으로 사령부에 전달된 것은 미 합동참모본부가 강조해 온 총체적 정세인식 능력(Total Situation Awareness)이 바야흐로 현실화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아프간에서의 성공은 미국의 군사우위 전략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이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적의 공격이 확인된 이후의 보복을 해왔던 전통적인 전쟁 개념과는 달리, 선제 공격을 포함한 적의 군사적 우위를 무력화할 수 있는 다양한 무기체계들이 개발되고 있다. 미래전의 특징은 적의 전략적 중력(Center of Gravity)을 소모적인 확전 없이 사전에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군사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과 부분적으로나마 영국밖에 없다. 특히 소모적 희생 없이 작전 목표를 완료할 수 있다는 것은 미국이 군사력을 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정책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 예로 2012년까지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핵탄두는 현재의 약 6,000개에서 약 1,700~2,200개로 하향 조정될 계획이지만 종전의 핵무기보다 월등히 높은 명중률을 보유한 차세대 핵무기들이 개발될 것이다. 현재 실험 중인 B61-11 핵폭탄은 지하 20피트까지 들어가서 표적을 제거할 수 있다.
미국은 지하 100피트의 표적들까지 파괴할 수 있는 새로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공격용 탄도미사일을 발사 직후 감지하고 파괴할 수 있는 미사일 방어(MD) 체제를 개발하고 있다.
결국 미국의 신 군사우위 전략은 9ㆍ11 사태 이전부터 준비돼 왔으나, 그 이후 더욱 빠른 속도로 전개될 것이다. 본토방위의 극대화, 능력중심의 국방기획, 새로운 핵 전략 구축, MD 체제의 조기 구축, 우주항공력 현대화 등이 골자가 된다.
동시에 군사력 격차가 벌어지면서 미국이 다른 나라와 맺은 군사동맹조약들이 공동(空洞)화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프간 전쟁에서 나토가 집단방위조약 5조를 발효시켜 전쟁의 명분을 지원했으나, 실질적인 군사작전은 미국 단독으로 1개월여 만에 완수한 것이 이런 맥락이다.
21세기 초 미국의 포괄적인 군사적 우위를 감안할 때 미국의 힘의 투사능력은 팍스 아메리카나를 최소한 향후 30~40년 동안 지탱시킬 수 있는 핵심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이정민(李正民)교수
■ 아메리카 핸드북 / 포트 브래그
미국이 전개하고 있는 대 테러전의 핵심전력은 정예 특수부대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계기로 미군 해외작전은 공군력과 지상의 소수 특수부대를 결합하는 방식이 주류를 이루게 됐다. 그런 점에서 노스캐롤라이나 페이어트빌 인근 포트 브래그(Fort Bragg)는 미 세계전략의 새로운 거점 기지로 주목받고 있다.
미 육군특전사령부(USASOC), 그린 베레, 델타포스 본부 등이 모두 이곳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지난달 15일 이라크를 겨냥한 2단계 테러전을 선포하자마자 이곳을 찾아 육해공 특수부대원과 하루를 보냈다.
브라이언 브라운 중장이 지휘하는 USASOC는 1989년 창설돼 산하에 7개 특전군 집단과 제75 레인저 연대 등을 두고 있다. 이 중에서도 정예병력 8만 8,000명을 보유한 제18 공수군단은 현재 미군 최대의 전투조직이다.
미 해병대원들은 “나는 소모품이다(I am expendable)”라는 구호 아래 훈련을 받아왔다. 반면 미군의 새 첨병인 USASOC 산하 부대는 “압제받는 자를 해방하기 위해(De Oppresso Liber: To Free the Oppressed)”라는 대외지향적 구호를 주입받고 있다.
제18 공수군단 예하부대를 꼽으면 그대로 아프간전 투입 부대 명단이 된다. 신속배치군 1만 2,800명과 9개 전차대대, 180대의 대 전차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제82 공정사단, AH_1S 코브라 UH_60형 블랙호크 헬기로 공중 기습공격을 맡는 3개 여단 등으로 구성된 제101 공정사단, 아프간 동굴 수색작전을 수행했던 제10 산악사단과 제18 항공여단, 제3 보병사단, 제160 특수작전 항공연대, 제229 공격헬기연대, 제24 기계화보병사단 등이 소속돼 있다.
인질구출, 마약 및 테러조직 와해공작을 수행하는 델타포스는 전 세계에 산재해 있지만 모두 포트 브래그를 거친다. 기지 외곽에 있는 델타포스 캠프는 주로 제82 공정사단에서 후보를 뽑아 혹독한 훈련을 거쳐 60%를 탈락시킨 뒤 요원을 선발한다. 기지의 이름은 미-멕시코 전쟁 영웅인 브랙스톤 브래그 장군에서 유래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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