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디란 한마디로 부자 아버지를 둔 백수 아들이다.평생 아버지 욕을 해대면서도 그 아버지가 벌어놓은 돈으로 연명하는 인간이다.
물론 아들은 ‘돈과 명예는 하잘 것 없다’는 식으로 아버지의 논리를 정면으로 부정해야 한다.
아버지인 전통은 패러디를 먹여 살리고, 아들인 패러디는 수준있는 골계미(滑稽味)로 보답해야 한다.
할리우드에서는 1970년대 후반부터 영화가 다른 영화를 패러디하기 시작했고, ‘총알탄 사나이’ ‘못말리는 람보’ 시리즈를 통해 패러디 영화가 버젓한 장르로 대접받기 시작했고, ‘무서운 영화’를 통해 완성을 보았다.
우리나라의 패러디는 할리우드보다 20년 가량 늦었다.
‘재밌는 영화’는 특정 장면을 패러디한 것이 아니라, 영화 전반에 걸쳐 한국 영화의 패러디를 시도했다. 시도라는 측면에서는 의미 있다.≫
기본 골격은 ‘쉬리’에서 따왔다.
상미(김정은)이면서 하나코인 일본인 킬러는 한국의 비밀정보부 요원인 황보(임원희)와 사랑하는 사이.
남북한이 월드컵을 공동개최하기로 하자 일본 우익집단은 무라카미(김수로)를 파견해 하나코와 함께 테러를 벌이도록 한다.
‘엽기적인 그녀’의 지하철 구토 장면, ‘친구’의 룸살롱 장면에서 장동건이 유오성에게 던진 “하와이, 니가 가라”는 대사를 비롯, 영화 ‘초록 물고기’ ‘넘버 3’ ‘동감’ ‘간첩 리철진’ ‘주유소 습격사건’ ‘비천무’ ‘반칙왕’ ‘접속’ 등 90년 후반에 발표된 한국영화 28편을 패러디했다.
김정은의 ‘성형’ 유머는 이 영화에서 박장대소가 터지는 첫 장면.
박경림에서 김정은으로 아름답게 변신한 하나코. 그러나 하나코는 한 손엔 이영애 사진, 다른 손엔 거울을 들고 외친다.
“이렇게 해 달랬더니 이게 뭐야. 이게 얼굴이야?” 또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밀고 “쌍꺼풀한 티 나냐. 코 세운 거 이상하냐”며 화를 내는 장면은 김정은의 데뷔 초기 성형공방을 연상케 하는 대목.
여배우로서 쉽지 않은 자기 희화화이다. 하나코와 일본 경찰의 대화 장면에서의 외화식 더빙, ‘거짓말’을 뺨치는 가학행위, DDR로 ID 카드를 대신하는 장면 등도 잔재미를 준다.
그러나 아까운 것을 버려야 하는 것이 패러디의 숙명. 아쉬울 때 끊어주는 웃음의 강약 조절이야말로 절대적이다.
그러나 ‘재밌는 영화’는 이 속도 조절에 실패했다. 한가지 발상을 너무 물고 늘어져 관객을 지루하게 만든다.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햄으로 교신을 하다(‘동감’) 마침내 성당에서 만나 뜨거운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 ‘약속’)이나 부산 40계단에서 벌어지는 순대를 이용한 살인(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같은 장면에서 적절히 생략하지 못해 시간이 갈수록 지루하고 유치하다는 인상을 던진다.
‘원작이 더 재미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패러디로서는 치명적이다.
“하나코를 잡아오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 나 여기까지 오는 데 오래 걸렸다”며 직원을 협박하는 반장은 웃음을 주기 보다는 원작인 ‘투캅스’의 양택조를 그리워하게 만든다.
수많은 영화의 코믹 장면을 또 다시 코미디로 패러디 하려 했기 때문이다.
‘달마야 놀자’에서 애드립으로 연기 맛을 살렸던 김수로, ‘다찌마와 리’에서 70년대 과장스런 깡패 임원희의 매력을 살리지 못한 것도 아쉬운 점 중의 하나.
장면과 상황은 패러디로 하되 스토리는 독창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쉬리’를 그대로 베껴냄으로써 결국 TV 코미디프로의 패러디 수준에 머물고 말았다. 신인 장규성 감독의 데뷔작. 15세 이상. 12일 개봉.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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