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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본회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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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본회퍼

입력
2002.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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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4월9일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가 프로센부르크의 강제수용소에서 처형됐다. 39세였다.본회퍼는 튀빙겐 대학ㆍ베를린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미국에 유학한 뒤 목사가 되었다. 귀국해서 베를린 공과 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그는 히틀러가 집권한 뒤에 도 반(反)나치 입장을 견지해 교직을 박탈 당했다.

유럽에 전운이 짙게 끼던 시절 강연 여행으로 미국에 가 있던 본회퍼는 대서양을 건너는 망명 대열에 끼인 많은 반나치 지식인들과는 거꾸로 공포와 압제의 서슬이 시퍼렇던 조국으로 돌아왔다. 조국은 강연과 집필 금지 처분으로 그를 맞았다.

본회퍼는 1942년 군부 내의 일부 반(反)히틀러 세력과 함께 히틀러를 몰아낼 계획을 세우고 영국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스톡홀름으로 가 영국인 목사와 접촉했으나 이 계획은 실패로 끝났다.

게슈타포는 이듬해 그를 체포해 미군이 프로센부르크에 진주하기 직전에 처형했다.

본회퍼는 신앙의 제재(題材)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정치신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정치신학은 이전의 신학이 사회의 구원을 도외시한 채 개인적 구원에만 몰입했다고 비판하고, 넓은 의미의 정치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세속 세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세계 대전의 공포와 고통 속에서 태동한 정치신학은 종전 이후 계급적ㆍ성적(性的)ㆍ인종적 맥락과 접합하며 남아메리카의 해방신학, 미국의 여성신학ㆍ흑인신학 등으로 가지를 쳐 나갔고, 1960년대 이후 미국에서는 마침내 하느님의 죽음을 선포하며 신을 부정하는 신학 곧 하느님 없는 그리스도론을 전개하는 사신신학(死神神學)으로까지 벼려지게 되었다.

1970년대 이후 서남동 안병무 서광선 등이 주도한 한국의 민중신학도 정치신학의 한 갈래라고 할 수 있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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