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각기동대'감독 오시이 '야수들의 밤'1969년은 일본의 ‘전공투(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 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때였다. 일본 젊은이들은 반미ㆍ반정부 정치 투쟁에 몸을 바쳤다. 오늘날 일본의 50대에게 전공투의 흔적은 짙게 남아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댄스 댄스 댄스’의 한 구절.
“1969년까지만 해도 세계는 단순했다. 전투 경찰대원에게 돌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자기 표현을 다할 수 있었다. 나름대로 좋은 시대였다.”
‘공각기동대’ ‘아발론’ ‘패트레이버’ 등 세계적인 애니메이션을 내놓은 감독 오시이 마모루(51)의 장편소설 ‘야수들의 밤’(황금가지 발행)이 번역출간됐다. 마모루도 혁명을 통한 사회 변혁을 꿈꾸었던 전공투 세대다.
그는 젊은 날을 회상하면서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고 고백한다. “그 당시 학생들은 딱 두 종류였다. 거리를 활보하며 운동에 가담하거나, 아니면 극장에 틀어박혀 있거나. 나는 둘 다 했지만.”
그가 2000년에 쓴 ‘야수들의 밤’은 자신이 실제 경험했던 시위 장면으로 시작한다. 1969년 4월 28일 반전(反戰) 공동투쟁의 밤에 고등학생 레이가 시위에 참가했다가 검거를 피해 도망친다. 그날 밤 우연히 살인사건을 목격하지만 신문에 기사 한 줄 나지 않은 채 묻혀진다.
마침 그 현장에서 피묻은 칼을 들고 서 있던 소녀 사야가 레이의 학교로 전학온다. 연쇄 살인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레이는 범행을 막기 위해 나선다.
‘야수들의 밤’은 마모루가 ‘블러드 프로젝트’의 일부로 기획한 소설이다. 블러드 프로젝트는 소니, 가도카와 출판사 등이 합작해서 애니메이션, 소설, 게임을 동시에 발매하기로 한 프로젝트. 이런 까닭에 소설 뒷부분의 황당한 내용은 만화를 염두에 두면 이해할 만하다.
소녀 사야가 사실은 흡혈귀와 인간의 혼혈이라든지, 레이와 사야가 인간 세상을 구하기 위한 결투를 벌인다든지 하는 대목은 애니메이션으로 옮겨질 때 한층 흥미진진해질 법하다.
주목할 것은 세 매체가 각기 다른 시대적 배경을 갖는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1966년 베트남전 당시 미군기지에 침입한 살인 흡혈귀와 비밀요원 사야의 사투를 그린다. 게임은 2000년 도쿄에서 일어나는 연쇄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마모루는 그러나 소설의 배경으로는 1969년 반전 투쟁의 밤을 가져온다. 소설을 쓰면서 마모루는 개인의 젊음을 삼켜버린 시대와 재회한다. 그래서 ‘야수들의 밤’은 비록 그 내용이 만화 같긴 하지만 인간에 대한 깊은 환멸과 회의가 담겨 있다.
주인공은 먼 옛날 인간은 흡혈귀와 조화롭게 지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만해져 흡혈귀를 짓밟아 왔다는 얘기를 듣는다. 흡혈귀는 인간이 ‘유일한 지성체’라는 이름으로 지배하고 파괴해온 수많은 것들에 대한 상징이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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