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 중계권을 소유한 세계 미디어산업계의 ‘큰 손’ 키르히(Kirch)그룹이 몰락 위기에 처해 있다.최근 유럽 언론은 키르히그룹의 심각한 재정난을 연일 보도하면서, 키르히그룹이 사업기반을 두고 있는 독일의 방송구도까지 빠르게 재편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파산설이 나돌고 있는 키르히그룹은 그 동안 무리한 사업확장에 따른 경영 실패와 키르히그룹이 소유한 유료채널의 신규 가입자 감소 등으로 약 65억 유로(7조 5,000억원)에 달하는 부채를 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할리우드 영화제작사에게 과다한 저작권료를 지불하면서까지 매년 약 1조1,000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는 스포츠ㆍ영화 유료채널 ‘프레미어레(Premiere)’를 운영함으로써 심각한 경영난을 자초했다.
키르히그룹의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한 각 국 기업들의 경쟁도 치열하다.
영국, 이탈리아,미국, 아랍권 기업들이 키르히그룹의 경영권 인수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영국의 머독(Murdoch)그룹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독일 여론도 현직 총리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같은 정계 실세들이 지배주주로 있는 이탈리아보다는 순수 방송사업자인 영국의 머독을 선호하는 형편이다.
머독은 주식 추가매입 등을 통해 키르히그룹의 경영권을 인수할 방침. 수년 전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구사일생한 바 있는 머독은 키르히그룹에 17억유로(약 1조9,500억원)를 투자해 키르히그룹이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프로지벤과 자트아인스 방송사의 인수를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외국계 기업들이 방송시장에 본격 진출하자 독일 방송계는 방송문화의 정체성 위기를 우려하면서 독일 기업들이 키르히그룹의 회생에 적극 참여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독일의 양대 공영 방송사인 ARD와 ZDF, 그리고 슈프링어 출판사가 키르히그룹에 자금을 지원하는 문제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분위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여론과 국내 기업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키르히그룹의 몰락으로 인한 독일방송환경의 지각변동은 불가피해 보인다.
또한 키르히그룹의 몰락이야말로 재정난 속에서 무리한 방송사업의 확장 결과가 어떤 것인가를 전 세계에 보여준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탁재택 KBS 방송문화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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