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5일 발표된 쌀의 유전자 분석 결과는 인간 게놈 해독에 비견될 중요한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기존의 품종 개량과는 비교할 수 없이 정확하고 빠른 속도로 수확 증대를 연구할 기초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다른 곡물의 유전자 해독 속도를 높이는 데도 적지 않은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사이언스에 게재된 연구 보고서는 두 가지다.중국 정부가 게놈 연구 강화를 위해 1999년 설립한 베이징 게놈 연구소가 워싱턴대 시애틀 게놈 센터와 공동 작업으로 내놓은 결과와 스위스에 본사를 둔 종자개량 기업 신젠타의 캘리포니아 샌 디에이고 연구소의 연구 성과다.미중 학자들의 공동 연구는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의 온대와 아열대 지역 주재배품종인 인디카로 이루어졌다.신젠타는 한국 일본이나 건조한 지역에서 주로 수확하는 자포니카 품종으로 유전자를 분석했으며 지난 해 1월 해독완료를 선언하고 이번에 결과를 공개했다.
게놈 해독으로 밝혀진 쌀의 유전자 숫자는 최소 3만2,000개에서 최대 5만6,000개.이 숫자는 앞서 게놈 분석을 완료한 과실파리(1만3,600개)와 애기장대(2만5,000개)는 물론 지난 해 완성된 3만5,000개 안팎의 인간 유전자 보다 많은 것이다.다른 식물과 마찬가지로 쌀의 유전자도 전체의 4분의 3정도가 동일한 염기 배열을 반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두 품종의 유전자 편차는 0.5~1%정도로 서로 다른 두 사람의 게놈에서 발견되는 차이보다 10배나 컸다.
이번 게놈 분석은 매일 2만4,000명이 굶어 숨지는 지구촌의 비참한 현실을 해결하기 위한 커다란 진전으로 평가 받고 있다.자포니카 종 연구에 참여한 신젠타의 슈테판 고프 박사는 "종자개량 연구자들이 이미 1,000개의 쌀 염색체 특징에 관한 지도를 갖고 있지만 이번 연구로 그런 특징을 낳는 유전자 배열이 어떻게 되는가까지 확인했다"면서 "밀 옥수수 보리 등 주요 곡물의 수확 촉진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전문가들은 유전자 정보를 활용한 품종 개량이 교배를 통한 전통 방식보다 우량종 개발 속도를 훨씬 높여 또 '제2의 녹색혁명'을 부를 것으로 보고 있다.신젠타는 특시 힉량난을 겪는 개발도상국 연구소들과 공동 연구를 추진할 계획이어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경쟁 연구팀들은 이번 성과를 비판하고 있다.1997년 일본의 주도로 구성된 컨소시엄인 '국제 쌀게놈 배열 프로젝트(IRGSP)는 미중 연구팀이 만든 유전자 배열 지도에 13만 군데에 이르는 허점이 있다고 지적했다고 뉴욕타임스가 5일 보도했다.IRGSP는 올해 말께 더 정확한 쌀 유전자 지도를 완성해 공개할 계획이다.
김범수기자
■게놈 연구 경과
1953년 DNA 이중나선형구조 발견
1969년 유전자분리 첫 성공
1986년 미 국립보건원(NIH) 인간 게놈 연구국 설립
1990년 인간 게놈 연구 계획 발표
1996년 효모의 유전자 지도 완성
1998년 셀레라 제노믹스 인간 게놈프로젝트 착수
2000년 셀레라 제노믹스 초파리 유전자 지도 완성
2001년 미국서 원숭이 복제 성공, 쌀 유전자 해독
■신젠타社 "게놈정보 공개못해"
세계 3위의 곡물종자 개량 기업인 신젠타도 인간 게놈 지도 완성을 발표한 셀레라 지노믹스에 이어 쌀의 게놈 해독 성과물에 대한 독점권을 주장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 같은 배타권 주장이 과학 발전을 가로 막는 걸림돌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신젠타는 4일 자포니카 쌀의 게놈 분석 정보에 대한 일반 공개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신젠타 대변인은 “경쟁 기업이 우리의 연구 성과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 동안 대부분의 유전자 연구 결과물은 국제 유전정보망인 유전자 은행(Gen Bank)에 올려 누구나 이용 가능토록 하는 것이 생명공학계의 관례였다. 대신 신젠타는 대학의 승인을 얻어 연구에 이용한다는 목적을 밝힌 경우 학자들에게 CD롬 타이틀의 형태로 자포니카의 유전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학자들은 CD롬에 담아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게놈 정보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에 의미 있는 연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20여 명의 저명한 유전학자들은 최근 사이언스지 기고를 통해 이 문제를 거론했다. 앞으로 경제적인 이익과 연관된 동ㆍ식물의 유전 정보가 해독될 때마다 문제는 계속 불거질 전망이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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