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산, 저 벌거숭이 산만 보면 억장이 무너져 내려….”지난 2일 강원 강릉시 사천면 경포도립공원내 야산. 정성드려 나무를 심던 최선길(崔瑄吉ㆍ66)씨는 불에 탄 소나무 숲이 허연 속살을 드러낸 채 신음하고 있는 산들을 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2년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강릉 산불 현장에 상록수, 왕벚나무, 자작나무 등 푸른 희망을 심고 있는 최씨. ‘산불조심’ 깃발과 장비를 실은 승용차를 몰며 산불 현장을 누비는 그는 주민들사이에 ‘산할아버지’로 통한다. 오전7시부터 오후6시까지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나무를 심고 가꾸는 그에게 산은 삶 그 자체다.
“다 타버렸어. 100년이나 된 노송(老松)들이 쩍쩍 갈라지며 검은 잿더미로 변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 최씨는 2000년 4월 9일동안이나 강원지역을 휩쓸고 간 화마로 강릉 일대 1,448㏊(약 430만평)의 산림이 폐허로 변할 때도 달려 나와 진화작업에 동참했다.
그가 다시 산에 오른 것은 지난해 산림 복구작업이 진행되면서부터. 폭격 맞은 것처럼 황폐화한 산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최씨는 편안한 노후도 내팽개친채 다시 나무를 심었다. “그 많던 나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산이 사막으로 변해 죽어가는데 나만 편할 수 있나.”
최씨가 나무와 질긴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62년 산림보호 9급 말단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97년 강릉시 산림과장으로 정년 퇴임한 뒤 평생을 돌봤던 나무들이 산불로 초토화하자 죄책감에 빠지기도 했다.
“내가 안 나서면 누가 이 넓은 땅에 나무를 심겠어.” 그는 오랜 공직생활에서 다진 전문기술을 현장에 전파하는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어린 묘목에 지지대를 세우는 위치며 물의 양 등을 시 직원 등에게 꼼꼼히 가르친다.
최씨가 지금까지 심은 나무는 수만 그루에 이른다. 그는 “지난해 심은 잣나무 300그루 중 2그루만 죽었다”며 “이 놈들도 잘 돌봤으면 살릴 수 있었을 텐데”라고 아쉬워 했다. 그런 최씨도 산 주인들이 찾아와 ‘개발한다’며 나무를 못 심게 할 때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는 요즘 새로운 꿈을 키우고 있다. “여기 보다도 더 심하게 망가진 북한의 산들을 보면 가슴이 너무 아파. 통일이 되면 그 황무지에 푸르디 푸른 상록수로 확 깔아놓을 텐데….” 그의 소망의 목소리는 상처가 아물지 않은 산등성이를 타고 북녘으로 향했다.
고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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