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패션산업은 아직까지 얼마나 많이 팔았느냐로 성패를 따지는 물량 중심의 경영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그러다 보니 해외 시장에서 얼마나 값싼 제품으로 가격 경쟁을 할 수 있느냐가 우리 패션산업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얼마나 많이 팔았느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브랜드가 생명이다.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고급 브랜드를 개발해 아이템을 넓혀나가는 ‘원 브랜드-멀티 아이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소비자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반복 구매를 통해 인지도를 높인 하나의 브랜드 중심으로 시장을 공략하는 경영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
또한 이렇게 구축한 하나의 브랜드는 제품 판매로 인한 수익 이상의 자산 가치를 기업에게 안겨 준다.
구찌나 페라가모 등 정상의 브랜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자산이다.
이를 위해 민족적 끼와 기질을 살리는 것은 하나의 방법이 된다. 이탈리아를 통해 우리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이탈리아의 주요 산업과 문화는 1930년대 대량생산 기술과 합리적 경영체제로 대변되는 미국식 현대화 과정에 힘을 입어 태동했다.
그러나 60년대에 들어서면서 철강과 중공업을 포기하고, 지리적 이점과 국민성을 한껏 살릴 수 있는 디자인을 정책산업으로 선정, 디자인 산업을 육성해 이제는 ‘패션의 본고장’이었던 프랑스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다.
일본은 정교하고 치밀하며 계획적인 독일의 산업모델을 받아들여 기계공업이나 정밀공업에서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이런 정교함이나 치밀함은 일본의 국민 기질과 잘 맞아 일본은 짧은 기간에 급속한 성장을 이룩해 동양의 독일이란 명칭까지 얻었다.
이런 정교함과 치밀함을 미덕으로 하는 산업사회의 기준으로 볼 때, 우리 국민은 산업사회에선 매우 부정적 기질을 갖고 있다.
그러나 급변하는 정보화 사회, 개인의 감성과 개성이 강조되는 미래 사회에서는 외부 자극과 문화에 탄력적으로 대체하는 여유로움 속에 내재된 예술적 ‘끼와 기질’이 가장 큰 장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모습을 기존 산업 모델에 맞추려 애쓸 게 아니라, 우리가 잘 하는 것,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산업화해야 한다.
작은 국토와 한정된 자원, 인적자원이 최고의 자산인 우리는 이탈리아와 같이 디자인과 패션산업을 국가의 전략산업으로 삼아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브랜드를 개발, 육성해야 한다.
구찌나 페라가모를 소유한 사람들이 그러한 브랜드로 인해 자부심을 느끼듯 우리의 패션 브랜드도 그렇게 돼야 한다.
훌륭한 브랜드 하나가 그 나라의 문화·기술적 위상을 높인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브랜드를 구찌나 페라가모 처럼 세계 시장에서 인정 받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기업인 모두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과제다.
이 범ㆍ㈜에스콰이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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