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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春來不以春

입력
2002.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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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에 봄 기운이 완연하다.한반도 주변에 몰아치던 경제적 황사현상이 걷히고 쾌청한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봄의 징후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증시는 지수 1,000 고지를 향해 순항 중이고 산업생산과 설비투자, 소비자 동향지수 등 각종 실물지표가 눈에 띄게 호전됐다.

한국경기가 상승무드를 타고 있다는 외국의 평가도 고무적이다.

국제 신용 평가 기관인 무디스는 지난 주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3로 2단계나 상향 조정했다.

외환위기 직후 정크 본드(투기등급)수준까지 떨어졌던 것을 생각하면 한국경제의 복원력은 경이적이라 할 만 하다.

장기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혹한기’를 보내고 있는 일본에 비해 우리는 확실히 일찍 온 봄의 훈풍을 만끽하고 있는 셈이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가 최근 특집기사에서 “한때 일본의 경제적 제자였던 한국이 이제 일본의 가정교사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한 것도 이 같은 시각을 대변하고 있다.

해외의 찬사는 분명 고무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현실은 달콤한 장밋빛 전망만 늘어놓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

우선 극심한 수출 부진이 문제다.

한국은행은 지난 해 내수가 성장에 기여한 비율이 77%에 달한 반면 수출은 23%에 그쳤다고 밝혔다.

1970년대 이래 수출의 성장기여율이 이처럼 떨어진 것은 처음이다. 지난 해의 성장(3%)은 수출부진을 내수로 만회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다행히 지난 달의 수출 감소 폭이 크게 둔화했고 이 달부터 증가세로 반전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그런데도 내수시장은 거품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다. 강남권 등 인기 지역의 주택청약경쟁률은 사상 최고 수준이다.

25ㆍ32평형의 평당분양가는 1,300만원을 넘어섰다. 당국이 뒤늦게 분양가 규제에 나섰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평당 2,000만원 시대가 마냥 먼 얘기가 아니다.

수 억원대의 외제차와 1,000만원 대 벽걸이(PDP)TV가 불티나게 팔린다.

경제가 균형감각을 상실하고 내수에만 의존하는 기형적인 성장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물가도 골칫거리다.

철도와 고속ㆍ시외 버스 요금은 평균 8%씩 올랐고 수도ㆍ 지하철ㆍ 택시 등 공공요금도 들먹거린다.

국제 유가도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불황에서 호황국면으로 전환한 뒤 6개월이 지나면 물가가 오르는 과거의 경험으로 미뤄 볼 때 올 여름부터 물가가 가파르게 오를 가능성이 크다. 이미 물가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달 29일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 “현재의 통화정책 기조가 유지되면 내년에는 물가 상승률이 더 높아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민간 경제연구소들이 내수 주도의 경기 과열 가능성을 잇따라 경고하고 경기 속도 조절론을 제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경제부처 장관들은 “아직 경기가 과열된 것은 아니며 따라서 경기조절을 할 필요가 없고 금리도 올릴 때가 아니다”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정확한 경기예측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지금이 경기의 저점인지, 과열로 접어드는 길목에 있는지는 적어도 3~4개월 후에야 판명된다.

경제정책을 세우기가 까다로운 것도 경제 수치를 확인한 뒤 대응하면 이미 늦기 때문이다.

한 번 시작된 불황이나 호황국면을 인위적으로 되돌리기는 대단히 어렵다. 통화정책에서 숫자보다 현장감각과 경험이 중요한 이유다.

정부는 연구소들과 기업의 경기과열 경고와 금리인상 충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거품경기에 휩싸여 외환위기를 맞았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경기동향을 면밀히 살펴 선제적인 통화정책과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펴야 한다.

모처럼 봄기운을 맞은 우리 경제가 다시 추위를 타지 않도록 정부의 현명한 처방전이 나와야 할 시점이다.

이창민 논설위원

cm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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