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원(林東源) 특사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4일 면담, 남북간 합의사항의 조속한 이행과 북미 대화의 필요성에 의견을 접근시킴으로써 북미간 갈등으로 악화한 한반도 안보환경이 극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높아졌다.특히 김 위원장이 미국과의 협상 재개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져, 한반도 위기의 핵심인 북한의 핵ㆍ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문제가 해결될 여지가 생겼다.
또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의선 연결사업 재개 등에 원칙적으로 합의, 지난해 11월 6차 장관급 회담 결렬 이후 중단된 남북 대화가 전면적으로 재가동되게 됐다.
임 특사는 2월 한미 정상회담 내용, 조지 W 부시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의 대북 인식 등을 일일이 거론하며, 9ㆍ11 테러 이후 미국이 비타협적으로 안보현안을 정면돌파하는 국제정세를 설명한 뒤 북미대화를 적극적으로 촉구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도 북미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면서 미국이 북측을 적대시 하지 않는 등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으로 교착된 북미관계는 뉴욕 채널이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협상 수위를 넘어 본격적인 대화 국면으로 접어들 개연성이 커졌다.
북미간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면, 잭 프리처드 미 한반도 평화협상 특사가 북한을 방문할 가능성도 있다. 김 위원장은 또 피랍자 문제로 교착상태에 빠진 북일 협상에 대해서도 재개할 의지가 있음을 확인했다.
임 특사는 또 “북미관계를 풀면서 동시에 정상회담으로 다져진 남북관계를 조속히 복원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먼저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미관계 개선을 이끌어내는 ‘선남후미(先南後美)’의 유효성을 설득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1월 정부ㆍ정당ㆍ단체 합동회의를 통해 남북관계 정상화를 하겠다고 결의한 바 있다”면서 “민족을 우선하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남측은 이산가족 상봉행사, 경의선 연결사업 재개 등을 도출하기 위해 조속한 시일 내에 대북 식량ㆍ비료 지원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남북은 이달 중 서울에서 2차 경협추진위를 갖고 이 문제를 협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임 특사는 6ㆍ15 정상회담에서 약속한 서울 답방 문제를 언급하면서 남측의 축제인 월드컵 개막식에 북측 최고위급 인사의 참석을 권유했으나, 김 위원장의 반응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아리랑 공연 준비가 막바지에 올랐다”면서 남측 인사들도 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면담 이모저모
임 특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4일 면담은 김 위원장이 임 특보 숙소인 백화원 초대소를 전격 방문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김 위원장은 1998년 고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과 면담할 때도 같은 형식을 취했다.
김 위원장은 면담 후 2시간여 동안 만찬을 함께 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근황을 임 특보에게 자세히 물었고, 부시 미행정부의 대북정책 등에 관한 솔직한 심정을 임 특보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이번 면담까지 포함, 4차례나 만났기 때문에 대화가 아주 깊숙하게 진행됐다.
특히 임 특사가 경의선 연결이 남북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국제사회에도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설득을 하자, 김 위원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면담 사실은 당국의 철저한 보안으로 만찬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야 공개됐다.
당국자들은 이날 저녁 내내 면담여부를 묻는 국내외 취재진에게 “서울의 궁금증을 평양을 통해 즉각 확인하지 못하는 상황” 등의 이유를 들면서 연막을 쳤다.
하지만 김홍재(金弘宰) 통일부 대변인은 오후 10시 50분께 급히 남북회담 사무국 프레스센터를 찾아 면담사실을 전격 공개했다.
뒤늦은 공개는 북측의 보안 요구 등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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