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7일은 두번째로 맞는 남녀평등주간이다. 여성에 대한 이 나라, 이 사회의 시각과 처우는 얼마만큼 달라졌을까. 고개가 갸우뚱 거려진다. 정부가 여성부를 만들고 모성보호법까지 제정하면서 남녀고용평등을 향한 첫 걸음을 내딛었지만 그 효과는 매우 미미해 보인다.사회적 편견과 성차별적 고용관행, 보직과 승진차별, 출산ㆍ육아부담 등이 여성들을 옭매고 있는 것이 요지부동한 우리의 현실이다.
▼ 저조한 여성 사회진출
우선 여성의 사회진출은 아직도 낙후국 수준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일자리를 원하는 여성이 실제 취업한 비율)은 48.8%. 99년 통계인 미국ㆍ스웨덴 등 선진국의 60~80%에는 턱없이 못미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중에서도 꼴찌다.
특히 노동력이 가장 왕성한 25~34세 여성들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0.2%(99년 기준)에 그쳐 70~80%인 선진국을 물론이고 말레이시아(53.5%), 인도네시아(56.6%) 보다도 낮다. 한해 대학을 졸업하는 여성비율이 45%에 달하지만 대졸 근로여성비율도 고작 14.9%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최근 여성 국회의원, 고위관리, 전문기술자 비율 등을 근거로 산출해 발표한 ‘2001년 여성권한 척도’ 순위에서도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64개국 가운데 말레이시아, 필리핀보다 보다 낮은 61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여성 인력들이 곳곳에서 사장(死藏)되고 있는 것이다.
▼ 열악한 근로조건
취업이 된다해도 여성들 앞에는 보직은 물론, 승진이나 보수 등에서 차별의 높은 벽이 버티고 있다. 우선 여성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2000년 95만여원으로 남성의 64.8% 수준. 호주 84.4%, 독일 74.3%에 비해 턱없이 적다.
2000년말 노동연구원 조사 결과, 전국 30인 이상 기업체에 근무하는 여성 중 과장급 이상이 4.2%에 그쳐 미국의 46%와 큰 대조를 보였다. 2급 이상 여성공무원(2000년 기준)도 0.5%인 2명에 불과하다.
일하는 여성의 직종이나 근로조건을 봐도 열악하기 짝이 없다. 여성근로자의 67.9%는 대표적인 비정규직으로 분류되는 임시ㆍ일용직. 10명 가운데 4명 정도는 서비스업이나 판매직에 종사하고 있다. 또 63.2%는 2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이 그들의 일터이다.
▼ 퇴출 1순위는 여성
임신 4개월인 이모(30ㆍ서울 영등포구)씨는 요즘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결혼을 봐 줄 수 있지만 임신을 하게 되면 당연히 사표를 내는 게 회사의 관례이기 때문. 최근 임신한 이씨는 연일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출근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모성보호관련법이 개정되면서 형식상으로는 출산휴가가 90일로 늘어나고 월 20만원의 육아휴직급여가 지급되는 등 모성보호 일부를 사회가 분담하게 됐다. 그러나 대다수 여성은 여전히 임신ㆍ출산을 이유로 해고당하거나 퇴직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 부설 ‘평등의 전화’ 에는 올들어 지난해 2월까지 모성관련 상담이 55건 접수됐다. 그 내용은 사측의 사직 요구, 휴가단축, 휴가무급처리, 부당전보 등이 주를 이뤘다. 특히 비정규직은 출산휴가 사용자체를 거부당하고 해고되는 사례도 많았다.
이를 반영, 세계적 컨설팅업체인 맥킨지의 ‘우먼코리아’보고서(2001년)는 한국의 여성인력 활용을 가로막고 있는 주요 장애요인으로 ▦직장내 성차별적인 인사제도 및 관행 ▦미흡한 모성보호ㆍ보육지원제도 ▦일반인의 의식부족 등을 꼽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금재호(琴在昊) 연구위원은 “남녀고용평등을 통한 여성인력 활용을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자율조정 기능을 원칙으로 하되 해결이 어려운 성차별 등은 정부가 적극 개입하는 등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방용성 노동부장관 "3개월 출산휴가 안주는 사업주 엄벌"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에게 그냥 주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이젠 여성 스스로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찾아가는 것이 남녀고용평등을 실현하는 지름길 중 하나입니다.”
남녀고용평등 주간(4월1~7일)을 맞은 방용석(方鏞錫ㆍ사진) 노동부 장관의 감회는 남다르다. 방 장관은 여성들이 전직원의 85%를 넘었던 원풍모방(현 우성모직)의 노조위원장 출신이기 때문이다. 방 장관은 “남녀고용평등을 위한 제도적 장치는 마련된 만큼 이젠 여성들이 분발할 차례”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모성보호 관련법 개정으로 월 20만원의 육아휴직급여와 출산휴가가 3개월로 늘어났지만 활용도는 기대 이하인 것이 현실이다. 방 장관은 그 원인으로 휴직 후에는 직장에 돌아갈 수 없다는 여성근로자 스스로의 걱정과 생산 차질 등을 우려한 사업주의 인식 부족을 꼽았다.
방 장관은 이에 따라 여성단체나 지방노동관서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여성 근로자들의 권리찾기 홍보를 벌이는 한편, 3개월 출산휴가를 주지 않는 사업주 등을 가려내 엄정한 법 집행을 할 계획이다.
또 현재 1년까지 가능한 육아휴직의 적극적인 사용할 수 있도록 전국의 고용안전센터 등을 통해 대체인력을 적극 알선하고 복직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주기 위해 휴직후 직장 복귀교육훈련프로그램을 개발해 보급하는 복안도 갖고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강국이 되려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60%는 넘어야 합니다.” 그의 변함없는 지론이다.
방 장관은 “특히 대졸 미취업자 등 고급 여성인력의 취업기회를 늘려주기 위해 정부지원 인턴중 여성비율이 50%가 넘도록 하겠다”며 “별도의 대졸여성을 위한 취업설명회도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이때문에…" 부족한 보육시설탓 여성퇴직자들 늘어
3살 된 아들을 둔 회사원 김모(33)씨 부부는 육아문제로 전쟁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출퇴근 시간을 서로 조정해가며 차로 10분 거리의 친척집에 아들을 맡기고 출근했다가 퇴근길에 데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퇴근 시간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아이는 울음을 터트리기 일쑤다. 김씨와 항공사에 다니는 부인 이모(32)씨 모두 한달에 2번 정도는 일요 근무를 해야 한다. 때문에 근무 스케쥴을 조정하느라 애를 먹곤한다.
육아문제는 직장여성들에게 가장 큰 멍에다. 여성부의 지난해 설문조사 결과, 직장여성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직장과 가정생활의 병행’과 ‘육아와 자녀교육 문제’가 꼽혔다. 직장과 가정생활의 병행 문제도 사실상 육아문제나 다름없다.
여성들이 어렵사리 직장을 구해도 아이를 낳으면 마땅히 맡길 곳이 없어 직장을 그만두는 게 현실이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여성 퇴직자의 70% 정도가 육아문제 때문에 직장을 그만 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우리나라 영ㆍ유아수는 대략 430만명. 반면 보육시설 수용인원이 70만여명에 그치고 있는 현실이 여성들의 힘겨운 생활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일례로 수용인원이 180명인 과천정부청사의 어린이집에는 대기하고 있는 어린이만도 400명이 넘는다.
보육시설 부족 뿐 아니라 보육시스템이 지나치게 민간 의존적이라는 것도 문제다. 보육시설 가운데 공공부문(정부지원을 받는 국ㆍ공립 및 법인 소속)은 16.9%에 그치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의 공공비중이 60%인 점과 비교하면 우리의 보육문제는 순전히 부모의 몫인 셈이다.
특히 24시간 눈을 뗄 수 없는 0~2세는 보육의 사각지대다. 이들을 전담할 수 있는 시설은 전국에 95개(수용인원 2,700명)에 불과하다. 만 3세 미만의 영아 수탁률은 7%에 그치고 있다. 돌보는 비용이 많이 들고 사고 위험까지 높아 민간시설에서 꺼리기 때문.
야간에 아이를 맡길 곳이 거의 없다는 것도 부모들을 힘들게 하는 점이다. 야간 보육을 실시하는 시설의 비율은 국공립이 4.4%, 놀이방 등 가정 보육시설이 13.8%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등 관계당국은 보육예산을 대폭 늘리고 자격증을 갖춘 보육모가 가정에서 영아 3명까지 돌볼 수 있도록 한다는 등의 현실성없는 대책만 남발하고 있다.
노동부 신명 여성정책국장은 “이젠 육아문제를 사회전체가 공교육으로 책임진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며 “공공기관부터 보육시설을 갖추는 것을 시작으로 보육비용의 국가재정부담률을 올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