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은 유난히 빨리 왔다.3월에 이미 4월 평년기온을 기록했고 벚꽃 소식도 1주일 이상 빨랐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한, 색색의 봄 꽃들이 이토록 서둘러 얼굴을 내밀고, ‘색시바람’이라는 특유의 찬바람도 이렇게 불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오는 봄을 시샘하는 자연의 불청객도 있었다. 바로 황사 바람이다. 하늘에 먼지 폭탄이라도 터뜨려 놓은 것처럼 우리의 시야를 가렸다.
대기 중에 녹아있는 누런 먼지는 불쾌감을 넘어 공포감까지 안겨 주었다.
학생시위로 얼룩졌던 60년대 말 대학에 다녔던 어떤 분은 황사바람을 보면 시위현장을 뒤덮던 최루가스가 연상된다고 했다.
중국에서는 황사를 풍사(風沙)라고 한다. 황사가 심하게 부는 날을 샤천바오(沙塵暴), 즉 모래먼지 폭풍이라고 쓴다.
황토 고원에서 날아 온 바람이라서 우리는 황색에 더 비중을 두는 반면 그네들은 모래 먼지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 황사는 진원지가 중국 서북부 사막이다.
가히 폭풍처럼 누런 안개가 온 세상을 뒤덮어서 초등학교가 아이들의 건강 때문에 문을 닫았던 날, 나는 중국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위안으로 삼았다.
서울보다 더 독한 황사를 견뎌야 하는 사람들이 중국에는 많을 텐데, 서해를 넘어온 바람 정도는 참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이었다.
황사 현상에 대한 기록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나온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황사 현상이 자주 기록돼 있다.
그 당시야 바다를 건너왔다고 생각은 못했을 터이지만, 산업화 이전 시대의 황사는 흙먼지라서 그다지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최근 중국이 급속히 공업화의 길로 나아가면서 먼지에 중금속 오염물질이 함께 섞여 오는 것이 큰 문제이다.
뿐만 아니라 지구의 기후 변화에 따라 중국의 서북부 지역이 더욱 사막화하면서 강도 높은 황사가 자주 발생하는 데 심각성이 있다.
물론 환경학자들이 경고하는 기상 이변이 인류에게 얼마나 큰 재앙이 될지 속단하기는 어렵다.
역사적으로 기상 이변은 길게는 몇 백년, 혹은 몇 십년 주기로 반복되었다.
중국에서 평균기온의 하락, 혹은 상승으로 농업생산에 영향을 미쳐 때로는 왕조의 운명을 흔들기도 했다.
황하만 해도 대홍수로 인해 수로 자체가 바뀌는 바람에 민중반란의 원인이 된 적도 있었다.
중국은 이미 서북부의 사막화를 방지하기 위해 녹화사업을 벌이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아직 자연의 변덕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더군다나 환경보전 보다는 공업화 추진이 급선무인 단계인지라 공해 대책에는 미흡한 상태다.
중국의 황사가 한반도를 뒤덮는 일도 일이지만 이번 기회에 더욱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중국이 진짜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하늘을 뒤덮는 황사정도가 아니다. 15억 중국인의 ‘보이지 않는 손’이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우리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한중 두 나라가 정식 수교한 지 올해로 10년인데, 역사상 요즈음처럼 양국관계가 대등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것은 우리 국력이 어느 때보다 강력해진 데 원인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 많은 인구를 상대로 한 기회의 나라 정도로 중국을 쉽게 단정한다면 큰 오산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중국의 분열기와 왕조 교체기 등 혼란기에 우리 역사가 발전하는 추세에 있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할 일이다.
차이나 드림(China Dream)을 안고 중국에 진출했던 한국인들 가운데 꿈을 날려버리고 실패한 경우가 많다.
이는 무엇보다도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철저한 사전 분석이 없이 꿈만 키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모래 폭풍만이 아니라 정치·경제적 폭풍이 몰아칠 때를 대비해 중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폭 넓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박지훈 경기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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