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중물: 어둠속에 앉아 있는 것들한밤중이다. 깜깜한 어둠 속에 모든 것들은 입술을 굳게 닫고 앉아 있다. 그것들은 내가 입술을 열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눈을 뜨자마자 나의 각막에 제일 먼저 와 닿는 창문, 어둠이 잔뜩 고개를 숙이고 있는 창문, 흰 격자 무늬가 기하학적으로 그려져 있는 창문의 입술도 딱딱하게 굳어 있다. 멈칫멈칫 일어나 마루로 걸어 나온다. 거기에도 어둠은 빼곡하다. 딱딱하다. 마루의 창 밖도 그렇고, 그 밖의 밖, 수평선도 그렇다.
창 앞으로 다가선다. 딱딱한 어둠 속에서 그 무엇인가가 연신 깜박거린다. 마치 서 있는 나에게 무슨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도 같이. 등대다. 단속적이나 끝없는 그 눈초리의 흔들림, 입술이 딱딱한 자의 염원.
나는 어둠 속의 모든 사물들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천정: 언제나 무슨 일이 있을까를 생각하며 기대에 차서 바라보고 있는 그것. 영산홍: 네 속에 있는 꽃을 내보여라, 네 속에 있는 꽃을…. 가로등: 창 밖 어둠 속, 바다 앞 주차장에 서 있는 그것-그림자를 골똘히 내려다 보며 서있는 그것. 집안으로 눈을 돌리니 의자들도 그렇고, 흰 벽도 그렇고…주전자도 그렇고….나는 주전자에 물을 담는다. 수도꼭지에서 콸콸 거리며 흘러나오는 그것, 물 속에도 꽉 다문 입술이 있다. 그것은 멈칫거리며 쏟아진다.
어떻게 하면 저것들을 말하게 할까. 저것들의 말의 욕구로 어둠의 모든 입술들을 움직거리게 할까. 마중물이 필요하다. 마중물은 펌프질할 때 맨 처음 붓는 한 바가지의 물을 말한다. 내가 던지고 싶은 물 한 바가지. 그 한 바가지 물에 의해 보다 깊이 숨어있던 지하의 물은 쏟아져 나온다.
말하자면 그 무엇으로도 잘 적셔지지 않던 물의 가슴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물의 헤집어져 있던 가슴들이 하나로 합해지면서 일어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물의 가슴 속은 아직 하얗구나. 아직 물의 입술은 딱딱하고 딱딱하구나.
나는 주전자를 가스불에 올려놓는다. 가스불을 켠다. 점화하는 순간, 파아란 불꽃이 주전자의 밑둥을 향하여 올라온다. 맹렬한 기세로 올라온다. 내가 꼭지를 틀자마자 저렇게 맹렬히 불붙다니…기다리고 있었구나, 무엇인가 점화해주기를. 나는 커피잔을 들고, 종에게로 간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종을 한 번 살짝 두드려 준다.
손가락으로 에밀레종의 쇠살을 살짝 두드려 보다가 두 개의 에밀레종의 두꺼운 쇠살을 서로 부딪혀 보게 하고, 자루가 긴 인도의, 나무로 된 종은 머리 위로 흔들어본다. 나의 경자(磬子)이니까. 경자는 원래 스님들이 책상 위에 놓고, 대중(大衆)을 깨우기 위해 한 번, 불도(佛道)를 깨우치기 위해 또 한 번 치던 종이었다.
나도 스님처럼 ‘세상을 깨우고, 나도 깨우소서_’중얼거린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종들의 소리는 깜깜한 어둠 한가운데로 걸어나간다. 어둠의 입술을 만지면서. 어둠의 어깨를 쓰다듬어 보면서. 어둠의 허리에 팔을 걸쳐 보면서.
그러나 어둠의 몸에 팔꿈치라도 부딪을까 조심하면서. 엉거주춤 현관에 서 있는 구두 한 켤레가 눈에 띈다. 참 많이도 걸어온 그것. 어느 고개인가의 흙을 밟으며, 어느 길목인가의 신호등을 건너며…왔을 그것. 현관에 구부정하게 서 있는 목이 긴 겨울 구두. 갑자기 한 가지 질문이 내 입을 걸어 나온다.
‘개인은 의미가 있는가. 무수한 개인은 결국 무수한 무의미인가. 생명 시스템의 한 가지 위에 있는’. 나는 절하기 시작한다. 들뢰즈는 ‘십자가라는 기호’ 아래서 온몸의 얼굴화를 꾀하고 있는 이가 예수라고 하고 있지만, 나는 나의 온몸이야말로 ‘문학의 얼굴화’가 되기를 순간 꿈꾸면서 절한다.
온몸이 종교화한 크리스트의 얼굴처럼 문학화한 나의 팔, 문학화한 나의 다리, 나의 손…. 어둠 속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바다에게도 절한다. 모래 언덕의 아무 곳에나 기도의 카펫을 까는 아랍인들처럼 나의 자그만 카펫을 편다. 이리저리 언어가 얽힌 나의 실크 카펫, 나의 마중물 언어가 앉아 있는 실크 카펫.
2. 마중물: 모래밭
날이 밝기 시작한다. 날이 밝을 때는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푸른 색을 이 세상은 잠시 띤다. 이러한 푸른 색은 저녁 무렵 또 한 번 있으리라. 모래밭으로 나간다. 물가에 앉아 있는 새를 바라본다.
가슴이 흰 물새의 추억: 지난 어느 여름날 아침, 모래밭 둔덕에서 물새를 보고 있었을 때 유독 무리에서 떨어져 고독하게 앉아 있던 물새의 부리에서 하얀 것이 휘익 하고 떨어졌다. 다른 새 한 마리가 그것을 얼른 받아 물었다.
또 한 마리의 물새가 끼어 들었다. 물새들은 경주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푸르르 한 마리가 날아 올라 버렸다. 싸움은 끝났다. 그 소리없는 아침의 싸움. 그 하얀 것은 물고기였다. 그 싸움 속의 새와 물고기의 관계를 생각해보라.
물고기는 새의 부리에 닿는 순간 죽어 갔으리라. 죽음은 그 물고기를 아무 것도 아닌 것[‘나의 최근의 어법’으로 말하자면 생명-기계, 생명-시스템의…]으로 만들고 있었으리라. 그 물고기가 물풀 사이를 유유히 달려 다니고 있었으며…장자의 ‘곤(鯤)’일지도 모르며…하는 사실들은 결코 말할 필요 없이.
그 물고기를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 3. 마중물: 그리로 가며 한낮에 나는 한 언덕으로 간다. 벚꽃이 하얗게 날리고 있다. 벚꽃 그림자가 땅을 꽈악 껴안고 있구나. 이미지 하나를 떠올린다. ‘벚꽃 그림자 땅과 만나 인사하다. 꼭 껴안는다.
시작.’ 장자의 ‘그림자 우화’를 생각한다. 읽을수록 맛이 나는 구절. ‘한 사람이 자기 그림자를 두려워하고 발자취를 싫어하여 그것을 떨쳐버리려고 달아났는데 발걸음이 잦을수록 발자취가 많아지며 달아나는 것이 빨라질수록 몸에서 그림자가 떨어지지 않으니, 자기걸음이 아직 더딘 때문이라 생각하고 쉬지 않고 질주하여, 힘이 다해 죽고 말았다고 한다.
그는 그늘에 있으면 그림자가 없어지고, 멈추어 있으면 발자취가 사라진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니, 어리석기 짝이 없구나.!’ (人 有畏影 惡迹 而去走者 擧足愈數 而迹愈多 走愈疾 而影 不離身自以爲尙遲 疾走不休絶力而死 不知處陰而休影 處靜以息迹 愚亦甚矣! ‘잡편’ 중에서)
4. 마중물: 경련 경련이 일어난다.
1972년 뇌수술 이후 가끔씩 일어나는 것, 춥거나, 배고프거나, 빛이 너무 현란하거나 스트레스가 너무 과도하거나 하면 일어나는 것. 내가 살과 피의 스파크라고 이름붙인 것. 지금 이 언덕에서 나는 좀 추운가. 배가 고픈가. 들뢰즈의 경련에 대한 해석이 떠오른다. 얼굴에 일어나는 경련에 대한 것이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얼굴의 주권적인 조직화에서 벗어나려 하는 얼굴성의 특징과 이 특징 위에서 갇히고 그것을 다시 붙잡고 그것의 도주선을 봉쇄하고 그것을 다시 조직화하는 얼굴 그 자체 사이에서 벌어지는, 언제나 다시 시작되는 싸움이다….’ 아무튼 이 싸움 너무 길다.
나는 ‘온 몸의 문학화’를 너무 주장하고 있는 것인가. 하긴 이번에 나는 나의 뇌사진을 다시 찍었다. 아름다웠다. 형광 램프에 비쳐진 나의 뇌사진은 마치 나비들이 엎드려 있는 것 같았다. 내 머리 속에 있는, 날지 못하는 수많은 나비들….
5. 마중물: 필그림 케이(Pilgrimk)의 디스켓에 넣어놓은.
꺼내주어라. 그 나비들을. 살려내어라. 그 물고기를.
그 ‘구두’에 대하여, 그 ‘천정’에 대하여. 그 ‘꽃그림자’에 대하여…써라, 끊임없이 써라. 그러니까 나는 아직 한 바가지의 물을 뜨고 있는 셈이다. 나는 잠 속에서도 이 펌프질을 계속하리라. 그리하여 새벽엔 다시, 어둠 속에 고독하게 앉아 있는 것들을 보리라, 들여다 보리라. 무의미의 의미[메를로 퐁티]가 되며.
pilgrimk : 강은교 시인의 아이디
●연보
▦1945년 함남 홍원 출생
▦1968년 연세대 영문과 졸업ㆍ‘사상계’ 신인문학상에 ‘순례자의 잠’이 당선돼 등단 ▦1983년~ 동아대 국문과 교수
▦시집 ‘허무집’ ‘빈자일기’ ‘소리집’ ‘붉은 강’ ‘우리가 물이 되어’ ‘바람노래’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 산문집 ‘그물 사이로’ ‘추억제’ 등
▦한국문학작가상(1975) 현대문학상(1991)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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