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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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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부토

입력
2002.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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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4월4일 파키스탄 대통령과 총리를 지낸 줄피카르 알리 부토가 교수대에서 삶을 마감했다. 51세였다. 부토는 학자 출신의 정치인이었다.미국 버클리 대학과 영국 옥스퍼드 대학 및 런던 대학에서 공부하고, 영국의 사우샘프턴 대학과 파키스탄의 신드모슬렘 법과대학에서 국제법을 가르쳤다.

정치인 부토에 대한 평가는 더러 상반될 만큼 복합적이다. 그것은 부토 자신의 정치 이력이 굴절되었던 탓도 있고, 파키스탄 정치가 험난한 굴곡을 겪은 탓도 있다.

야당인 파키스탄 인민당 지도자 시절 군사독재자 아유브 칸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이끌다 투옥되기도 한 부토는 집권한 뒤 점점 무모하고 탐욕스러운 독재자로 변했다.

국가 수반과 정부 수반을 연이어 맡으며 부토가 독재를 강화하고 있었을 때, 그를 좋아하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시민들의 반정부 폭동이 정점에 이른 1977년 7월 육군참모총장 지아 울 하크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무너뜨리고 이내 부토를 국가변란 및 살인죄로 처형하자, 부토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하크의 가혹한 군사독재 정권 아래서, 처형된 옛 민간 독재자는 민주주의의 순교자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리고 저승의 부토를 감싼 아우라는 이승에 사는 그의 딸 베나지르 부토에게 고스란히 이전되었다.

1988년 하크가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뒤, 베나지르 부토는 아버지가 창립한 파키스탄 인민당을 이끌고 총선에서 이겨 이슬람권의 첫 여성 총리가 되었다.

그는 두 해 뒤 권력 남용 혐의로 실각했고, 1993년의 총선 승리로 다시 총리가 됐으나 세 해 뒤 실정과 부패 혐의로 실각했다. 베나지르 부토의 정치적 능력이 어떠했든, 그가 만일 남성이었다면 그렇게 쉽사리 권좌에서 내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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