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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 시즌 개막 하루앞둔 KBO 박용오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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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 시즌 개막 하루앞둔 KBO 박용오 총재

입력
2002.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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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2월1일, 국내 프로야구사에 영원히 기록될 경사가 났다. 82년 프로야구 출범이후 굳어졌던 낙하산인사의 관행을 깨고 구단주 출신이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로 선출된 것이다.야구인들은 프로야구사에 한 획을 긋는 일대 사건이었다고 지금도 말을 한다. 당시 두산 베어스 구단주였던 박용오(65)씨가 정부의 눈총을 받으면서 최초의 민선총재로 탄생했다.

박 총재는 취임 일성으로 “월급과 판공비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지금까지 무보수 총재로 활동하고 있다.

프로야구는 올해 2개의 빅 이벤트와 경쟁해야 한다. 한일월드컵과 부산아시안게임이 바로 경쟁상대다. 2일 만난 박 총재는 의외로 담담했다. “빅 이벤트의 영향을 다소 받겠지만 프로야구의 인기가 가라앉을 정도로 저변이 얇지 않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를 만나본 사람이면 직설적인 말투에 적잖게 놀란다. 꾸밈 없이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다 보니 구설수에 오르기도 한다.

2000년 초 선수협의회 출범이 사회적 이슈가 됐을 때 “프로야구를 안 할 수도 있다”는 폭탄발언으로 곤욕을 치렀다.

그러나 그는 인내로 극복하고 선수협의회측과 극적으로 타협, 우리 프로야구가 한단계 성숙해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민선총재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전임 총재들도 많은 일을 했다. 하지만 두 분을 제외하고는 임기를 제대로 마치지 못해 정책의 일관성과 업무의 연속성이 없었다.

그래서 임기가 보장되는 민선총재가 필요하다. 프로야구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스포츠다. 경영마인드를 갖고 있는 기업인이 총재를 맡는 게 너무 당연하다.” 소신발언을 하면서도 표정은 심각해졌다.

내년 3월이면 임기가 끝나는 데 마땅한 후임자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선총재가 그의 뒤를 이어주길 누구보다 바란다.

역대 총재 가운데 그만큼 팬들과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이도 드물다. 선수협의회 출범, 쌍방울 퇴출과 SK의 프로야구 참여, 해태매각 등 난제가 많았다. 그는 “지난 2, 3년이 마치 20~30년 같은 느낌이었다.

오죽하면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까지 했을까. 각 구단과 주위 분들의 도움으로 난제를 풀어갈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프로야구 원년 두산의 사장을 맡은 뒤 구단주를 거쳐 총재에 올랐다. 그도 원년멤버인 셈이다.

“야구는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규칙이 복잡하고 보면 볼 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보고 즐기기에는 야구처럼 재미있는 스포츠도 없다. 그래서 한번 맛을 들이면 좀처럼 헤어나올 수 없다.” 21년간 야구와 인연을 맺어오면서 터득한 그의 야구관이다. 미국 뉴욕대 유학시절 메이저리그에 빠졌던 그는 전문가 수준의 야구지식을 갖고 있다.

“프로야구의 수장이라는 자리는 무척 매력적이다. 물론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복잡하고 책임져야 할 일이 적지 않다. 조금만 궤도를 이탈해도 팬들의 비난이 쏟아진다. 때때로 이런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이 자리에 있어야 하나 하는 의구심이 일기도 한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무척 심했던 모양이다.

“500만명을 넘어섰던 관중이 급감했다가 지난 시즌 다시 30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많은 팬들이 야구장을 찾아주어 재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다. 프로야구는 올 시즌에 제2의 전성기를 맞을 것이다.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프로야구가 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시즌 개막을 앞둔 그의 다짐이자 화두는 프로야구의 르네상스였다.

정연석기자

yschung@hk.co.kr

●프로필

▲1937년 3월19일 서울출생 ▲경기고,뉴욕대졸업(64년) ▲두산산업대표이사(77년) ▲프로야구 두산 구단주(91~98년) ▲전경련 부회장(97~) ▲(주)두산회장(98년~) ▲한국야구위원회총재(98년~)

■한국 커미셔너는 실권 가진 관리자

커미셔너(Commisioner)는 프로스포츠의 품위와 질서를 유지하는 최고책임자다. 프로야구가 성행하는 미국 일본 한국은 커미셔너를 두고 있다. 커미셔너는 메이저리그에서 처음 등장했다.

1919년 승부조작사건인 블랙삭스 스캔들로 메이저리그의 인기가 급락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21년 커미셔너제도를 채택했다.

커미셔너는 리그나 팀 또는 선수간 분쟁을 조정하는 게 주임무이다. 하지만 시대적 상황에 따라 커미셔너의 위상이나 역할이 변했다.

초대 커미셔너는 구단간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판사출신이 선임됐다. 이후 포드 프릭, 보위 쿤, 피터 위버로스 등 명망있는 인사들을 거쳐 지금은 밀워키 브루어스의 구단주출신인 버드 셀리그가 커미셔너로 활약하고 있다.

미국의 커미셔너는 제왕적 위상을 지닌다. 요즘은 예전만 못하지만 보위 쿤 커미셔너는 메이저리그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다. 그의 말 한마디에 따라 프로야구와 관계를 맺고 있는 방송사나 구단 또는 선수들의 운명이 좌우됐다.

일본은 관리형 커미셔너에 가깝다. 리그회장이 훨씬 막강하고 커미셔너는 양 리그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활동할 뿐이다. 법조인 출신들이 주로 커미셔너로 추대된다.

한국프로야구의 커미셔너는 미국과 일본의 절충형이다.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일본처럼 관리자로만 머물지 않는다.

박용오 총재 이전까지는 정부의 고위관리나 정치인출신이 얼굴마담격으로 들어와 무늬만 커미셔너인 경우가 많았다.

박용오 총재가 최초의 민선 커미셔너로 선출된 뒤 일하는 총재의 이미지가 강하다. 총재는 8개 구단 사장단 모임인 이사회를 주재하면서 프로야구의 각종 현안에 대한 구단간 입장을 조정한다.

규약상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구단주총회가 최근 유명무실해져 총재의 권위가 많이 약해졌다는 시각도 있다.

정연석기자

ys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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