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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필을 쓰다 / 옛 '입말'… 참 맛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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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필을 쓰다 / 옛 '입말'… 참 맛있구나

입력
2002.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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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삼진날 연자 날아들고 호접은 편편 나무나무 송림 가지 꽃이 피었다. 춘경을 떨쳐 먼 산은 암암 근산은 층층 태산이 울려 천리 시내는 청산으로 돌고 이 골 물이 주르르 저 골 물이 콸콸 열의 열 두 골 물이 한데로 합수쳐 천방자 지방져 월턱져 구부쳐 방울이 버큼져 건너 병풍석에다 마주 쾅쾅 마주 때려 산이 울렁거려 떠나간다”남도 민요 ‘새타령’은 이렇게 시작한다.

제비가 날고 나비는 쌍쌍으로 노닐고 송화가루 휘날리는 봄날, 산이 떠나가라 우당탕 흘러가는 계곡 물소리며 바위에 부닥쳐 날리는 흰 포말이 바로 앞에 보이는 듯 들리는 듯 여간 시원하고 상쾌한 게 아니다.

봄 풍경 묘사로 이처럼 생생한 게 또 있을까.

소리 내어 읽으면 더욱 시원하다. 말의 호흡과 장단이 척척 맞아 떨어져 흥이 절로 난다.

그중에도 ‘이 골 물이 주르르~산이 울렁거려 떠나간다’ 대목은 유독 사랑을 받아 판소리 수궁가에도 나오고 적벽가에도 나온다.

‘천방자 지방져 월턱져 구부쳐 방울이 버큼져’를 읽어보라. 절로 노래가 된다. 그것 참!

판소리나 민요가 우리말을 얼마나 맛있고 멋드러지게 구사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예는 수두룩하다. 재 든 절간의 요란한 풍악 소리를 들어볼까.

“법고는 두리둥둥 강쇠는 꽝꽝 목탁은 또도락 죽비는 찰찰 정쇠는 땅땅 바라는 치르르”. 그 가락이 좀 더 잘게 쪼개지면 “목탁은 또드락 똑닥 꽝쇠는 꽈광 꽝꽝 바라는 채잴채챌”로 변한다.

‘치르르’는 바라를 마주 치는 소리, ‘채잴채잴’은 비벼 문지르는 소리다. 소리만 들리는 게 아니고 주법까지 보인다.

춘향가에서 신관 사또 부임 행차는 음악이 있어 더욱 뜨르르하다.

“바라 한 쌍 쾌 통 채르르, 나팔은 또-- 고동은 뚜- 퉁 괭 지르르르르 나노나 지루나 나발은 흥앵흥앵.” 불고 치는 악기의 조선시대 브라스 밴드 사운드가 자못 흥겹다.

그런가 하면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을 찾은 이도령이 들판에서 만난 농부들은 북과 꽹과리를 두드리며 논다. “뒤둥둥둥 깨갱매깽매깽매 얼럴 럴럴 상사디여.”

흥부네 집 박 타는 소리는 “실근 실근 실근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실근 시리렁 실근 실근 쓱싹 콕칵”하고 시름 반 흥 반으로 넘어간다.

흥부 부부가 여러 날 굶어 기운 없는 줄 아는지 박은 슬슬 하는 톱질에도 ‘쓱싹 콕칵’ 부드럽게 쪼개진다. 기특한지고.

이제 의태어로 넘어가보자.

“두 귀는 쫑긋 두 눈 도리도리 허리는 늘썩 꽁닥은 묘똑.” 이게 뭔고 하니 토끼 화상이다.

수궁가에서 용왕의 치료약으로 쓸 토끼 구하러 나가는 별주부에게 수궁 화원이 토끼 화상 그려주는 대목이다. 과연 토끼구나. 꼭 그렇게 생겼다.

예를 들자니 끝이 없다.

한참 살피다 보니 요즘 우리는 옛날 조상들이 쓰던 생생한 입말을 참 많이도 잊고 지내는구나 싶다.

그 말들을 그리워지면 판소리며 민요를 읽고 듣는다. ‘참 맛있다’ 하고 입맛을 다시면서.

오미환 문화부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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