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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 10주기…오늘 하동서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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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 10주기…오늘 하동서 추모식

입력
2002.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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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작가 이병주(李炳注ㆍ1921~1992)는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광(月光)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그는 ‘작가란 태양빛에 바래진 역사를 새로 쓰는, 역사의 복원자’라고 믿었다.

그 믿음을 갖고 ‘관부연락선’ ‘지리산’ ‘산하’ 등 수십권의 역사소설을 쏟아냈다. 모두 한국 현대사를 복원한 문제작이었다.

이병주 10주기 추모식이 3일 개최된다. ‘나림(那林) 이병주 선생 추모사업회’ 주최로 고인의 고향인 경남 하동군에서 열리는 행사다.

소설가 이문열(54)씨가 이병주의 작품 세계, 김종회(47) 경희대 교수가 고인의 역사의식에 대해강연한다.

추모문학비 제막식과 학생 백일장, 추모 예술공연 등도 진행된다. 기념사업회는 앞으로 이병주의 생가를 복원하고 문학관을 건립할 계획을 갖고 있다.

때마침 ‘이병주의 동서양 고전탐사’가 23년 만에 재출간됐다. 지난달 ‘이병주의 에로스 문화탐사’가 15년 만에 복간된 데 이어서다.

이병주는 빼어난 문사(文士)였다. “나는 프로 작가다. 따라서 작품을 많이써야 하며 어떠한 것도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는 한달 평균 원고지 1,000장, 많게는 하룻밤새 원고지 200여장을 썼다.

44세에 늦깎이로 등단했지만 그가 남긴 원고는 10만여 장, 단행본으로 80여 권이다. 엄청난 분량이었지만 기계적으로 쏟아내는 글쓰기는 아니었다.

그의 문장에는 놀라운 박력이 있었다. ‘이병주의 동서양 고전탐사’ 중 사마천(司馬遷) 편에서 사관(史官)을 묘사한 구절.

‘사관(史官)은 기록자(記錄者)다. 유일한 기록자다. 그가 붓을 들지 않으면 이 세상에 기록이 남지 않는다. 그 대신 써 놓기만하면 하대(下代)에까지도 사실로서 남는다. 그런데 써야 할 것과 쓰지 않아도 될 것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사관이 할 일인 것이다. 써야 한다고 결정한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써야 한다.’

이 문장은 스스로의 창작 활동을 가리킨 것이기도 했다.

이병주는 철저한 자료 수집과 취재를 바탕으로 현대사를 소설 공간에 재현하는 작업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는 ‘문학의 사관’이었다. 농도 짙은 문체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성(性) 문학으로 이름난 미국 소설가 헨리 밀러의 작품을 깊이있게 이해한 몇 안되는 작가로 꼽힌다. 그만큼 그의 작품 속 성애(性愛) 묘사는 화려한 것이었다.

대표작 ‘지리산’은 역사의 복원이라는 그의 신념을 생생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일제의 징용을 피해 지리산으로 입산한 젊은이들이 해방 이후 좌익 이데올로기의 열정에 휩쓸려 남로당으로 활동했다.

이들은 그러나 ‘지리산으로 가면 살 길이 있다’는 말을 절박하게 외치면서도 ‘과연 지리산으로 가면 살길이 있을까’라는 회의를 떨쳐 버리지 못했다.

이 젊은이들이 한국전쟁을 전후해 지리산 빨치산으로 최후를 맞이하는 내용의 이 소설은 조정래의 ‘태백산맥’, 김원일의 ‘겨울골짜기’ 같은 분단 문학의 물꼬를 텄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10주기가 되도록 이병주에 대한 평가는 조심스럽다. 박정희 정권 출범 당시 ‘국제신보’ 주필이었던 이병주는 1961년 한반도 영세중립국화를 주장한 논설을 쓴 뒤 구속됐다.

2년 7개월을 복역하고 출소해 1주일 만에 감옥 체험을 쓴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완성해 발표하면서 작가로 출발했다.

그는 사망 직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문을 최종 검토하고, 전 전 대통령의 시절을 조명하는 ‘소설 제5공화국’을 집필했다.

91년에 펴낸 ‘대통령의 초상’에서 12ㆍ12는 쿠데타가 아니라는 평가를 내리는 등, 말년의 그의 모습은 한국현대사 그것도 작가 자신의 당대의 상처에 지나치게 깊숙히 개입해버린 것이었다.

이문열씨는 3일 추모식에서의 강연에 대해 “아무도 작가 이병주에 대해 말하지 않아 내가 말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병주의 삶이 그의 문학에 대해 얘기하려는 목소리를 낮추고 침묵하도록 했다는 게 세간의 평이다.

이런 망설임을 접고 이병주의 문학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삶에 대한 엄정한 평가 또한 뒷받침되어야함은 물론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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