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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띄우는 편지

입력
2002.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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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고속도로를 달리는 재미가 쏠쏠합니다.길이 좋아지고 구간이 다양해진 것은 물론 휴게소가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급호텔에 버금가는 깨끗한 화장실, 돈이 아깝지 않은 정갈하고 맛있는 음식, 종업원의 친절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책잡을 것이 없습니다. 정말 사람 대접을 받는 느낌입니다.

2, 3년 전만 하더라도 일부 몇몇 휴게소만 그랬는데 이제는 몇몇을 제외하고 대부분 그렇습니다.

그런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트럭을 개조한 노점입니다. 휴게소 주차장의 가장 좋은 곳을 차지하고 있죠.

몇 년 전부터 하나 둘 씩 나타나기 시작한 노점은 이제 어느 휴게소에나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흥미로웠습니다.

제법 휴게소측의 눈치도 보았죠. 파는 물건도 휴게소에서 찾을 수 없는 특이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삶은 고동, 번데기, 찐 옥수수 등 애교가 넘쳤습니다. 물론 불법 상행위입니다.

도로교통법으로 단속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마련한 독특한 것을 사먹는 맛은 휴게소에서의 또 다른 재미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많이 달라진 모습입니다. 트럭의 크기도 제법 커졌고, 한 휴게소에 두 대씩 들어선 곳도 있습니다.

문제는 파는 물건입니다. 애교 넘치는 간식거리는 거의 자취를 감췄습니다.

자동차 용품이 대종을 이룹니다. 자동차 용품 사이사이에 정말 독특한 물건들이 보입니다.

회칼 세트, 낫, 전기톱, 심지어는 돌을 깨는 망치까지 있습니다. 살벌합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느끼하기까지 합니다.

콘돔을 비롯해 부부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성인용품, 에로 비디오를 불법복제한 CD도 한쪽 구석을 차지합니다.

노점은 눈만 괴롭히는 것이 아닙니다. 귀도 소란스럽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음악은 대부분 부담없는 클래식이나 경음악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휴게소 음악은 노점이 틀어놓은 쿵쾅거리는 트로트 메들리에 가려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술취한 단체관광객이 앞으로 몰리면 흥겨운(?) 즉석 춤파티가 벌어집니다. 건물 안은 분명 최신식인데 그 앞마당은 1960년대입니다.

물론 한꺼번에 노점을 몰아내기는 힘들 것입니다. 강압적으로 생계의 틀을 부수는 무지막지한 시대는 아니니까요.

없애지 못한다면 휴게소 문화와 보조를 맞추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눈에도 이상하게 보이는데 외국인들은 얼마나 의아하게 생각할까요.

월드컵, 한국방문의해, 내국토 먼저보기… 휴게소 노점을 바라보고 있으면, 거창한 행사와 구호가 진짜 거창하게 느껴집니다.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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