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부동산시장 안정대책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값이 좀처럼 꺾이지 않자 서울시와 시민단체가 주택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과도한 분양가의 규제를 요구하고 나서 분양가 논란이 새 국면을 맞고있다.또 "과거처럼 분양가를 규제할 경우 부작용이 더 크다"며 분양가 규제에 반대하던 정부도 직접 규제는 피하는 대신 분양가 과다책정업체에 대해 법인세 추가 징수 등 간접규제 방침을 밝혀 어떤 식이든 분양가에 제한이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분양가 규제의 목소리
한국청년연합회와 한국소비자연맹은 지난달 건설사들을 상대로 분양가가 적정가 이상으로 과도하게 책정되고 있다며 아파트 분양가 결정과정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나섰다.
건설사들이 매입지가와 건축비를 부풀려 분양가 거품을 조장하고 있다는 불만이 정보공개 요구의 배경이다.
특히 한국소비자연맹은 건설업체들이 기업비밀 등을 이유로 정보공개를 거부할 경우 행정소송까지 청구한다는 강경한 방침이다.
시민단체의 선공은 3차 서울동시분양에 나온 분양가 거품제거를 겨냥하고 있다. 이번 동시 분양에서 강남 J아파트 25평형의 평당 분양가가 1,285만원으로 국민주택 규모의 아파트 1채 가격이 3억원을 호가했다. 강남지역의 평균 분양가도 평당 1,467만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10%이상 뛰었다.
여기에 서울시가 강력한 규제책까지 들고나와 분양가에 대한 협공에 뛰어들었다. 서울시는 1일 분양가를 과도하게 책정한 건설사를 국세청에 통보하고 분양승인도 제한한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기본적으로 건설업체가 실제 공사비보다 분양가를 높게 책정해 기존 주택가격을 상승시키는 혼란을 초래하고 나아가 분양가 책정단계에서 탈세까지 저지르고 있다는 판단이다.
◈ 분양가는 시장논리에 맡겨야
건설사들은 분양가 거품과 규제 주장에 대해 적극 반대 입장이다. 막대한 대지비와 마감재의 상승 등으로 분양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특히 분양가규제 조치는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주장이다.
모 건설사 관계자는 “주택시장의 공급이 현재도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국세청 통보, 분양승인 규제 등의 조치를 취한다면 모처럼 타고 있는 건설경기는 급격히 위축되고 아파트 가격은 더욱 급등할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교통부도 분양가 문제는 업계의 자율화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급격한 가격규제 조치를 취한다면 단기적으로 시장가격과 격차가 벌어지고 이를 노리는 투기세력까지 준동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 일각에서는 경기위축을 우려, 규제조치를 자제한다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국세청 역시 “국민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수익구조가 열악한 건설사 등에 대해서는 상반기 동안 세무조사를 실시하지 않기로 올해 초 업무보고에서 약속했기 때문에 세무조사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론의 비판이 거세자 재경부 건교부 국세청은 2일 서울시와 대책회의를 갖고 "분양가가 주변시세보다 과다하게 책정될 경우 해당업체에 적정가격 유지를 촉구하고 이를 이행치 않으면 국세청에 통보,과세자료로 활용토록 하겠다'고 결정했다.
◈ 분양가 자율화 이후 분양가, 아파트가격 연쇄상승
1998년 분양가 자율화 조치 이후 신규 아파트 분양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다. 자율화 조치 직전인 1997년 평당 502만원 하던 서울지역 분양가는 지난해 745만원으로 48%나 급등했다. 강남지역은 691만원에서 1,330만원으로 2배 가까이 뛰었다.
분양가 상승은 아파트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데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 기존 아파트 주민들은 주변에 신규로 들어서는 아파트의 분양가에 맞춰 시세를 책정하는 게 일반화한 관행이다.
내집마련 정보사 김영진 사장은 “건설사의 분양가 끌어올리기, 수요우위의 주택시장 현실, 주택시장 활성화 정책 등이 맞물려 분양가 상승이 지속돼 왔다”며 “분양가에 대한 규제조치에 앞서 분양가 상승이 아파트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는 특단의 방법이 강구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건설사 분양가 책정방식
아파트 분양가 인상에 대해 업체들의 변(辯)은 땅값 상승 및 고급 마감재에 따른 원가상승으로 모아진다.
아파트의 원가 구성은 지역에 따라 격차가 심하지만 수도권의 경우 대지비가 50~60%로 가장 많고 건축비 30~35%, 각종 세금 10%등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외환위기이후 주택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분양가 책정의 칼자루가 일방적으로 건설사에게 돌아가면서 건설사마다 대지비(땅값)와 건축비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신규 아파트 분양가를 높게 책정하고 있다.
특히 강남 등 인기지역일수록 부가가치세가 면제되는 대지비를 크게 높여 세금을 줄이는 등 일거양득을 취했다.
실제로 서울지역 3차 동시분양에 강남에 아파트를 분양하는 L건설은 실제 매입한 땅값과 분양공고상 땅값이 무려 164억원의 차이가 나고 J건설의 경우 공개입찰을 통해 매입한 땅값과 분양공고상 땅값이 366억원에 이른다.
분양가 자율화이후 해당관청이 사업승인시 대지비와 건축비의 적정성 여부를 심의하는 절차가 폐지된 상황에서 업체들이 고무줄처럼 분양가를 책정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고급자재로 마감하고 빌트인(built-in) 가전제품 등을 들여놔도 평당 20%이상 차이가 날 수 없다”며 “올릴 수 있는데 까지 올리는 것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다.
올 2차 동시분양 당시 33평형 아파트의 평당 건축비를 살펴보면 공릉동 길성아파트는 310만원, 서초동 롯데는 무려 724만원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건설업체들이 객관적 기준보다 여건과 분위기에 따라 분양가를 적당히 조정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와함께 재개발ㆍ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수주경쟁에 따른 수십억원의 홍보비뿐만 아니라 조합원 이주비와 금융비용 등 ‘조합사업비용’까지 분양가에 포함된다.
김혁기자
hyukk@hk.co.kr
■대안은 없나
전문가들은 분양가에 거품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규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닥터아파트 곽창석이사는 “분양가 상승이 집값 상승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므로 심정적으로는 분양가 규제에 찬성한다”며 “그러나 분양가를 규제하면 시장에서 형성되는 분양권값과 실제 분양가의 괴리가 커져 투기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주택공급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예전처럼 평당 얼마 이상은 되지 않는다는 식의 직접적인 가격규제보다는 건설사, 시행사가 자발적으로 분양가 산정방식을 공개하는 장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마디로 건설사의 자정노력을 기대한다는 입장이다.
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사장은 “건설사 스스로가 토지비 공사비 이윤 등의 산정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면 소비자도 적정 분양가를 판단할 수 있고 시장의 자율성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또한 제대로 지켜질 지는 미지수. 이에 따라 정부가 시민단체와 함께 분양가 감시기구를 만들어 가동하는 방법도 제시되고 있다.
한국산업관계연구원 박수규 부원장은 “열띤 청약경쟁률에 편승해 분양가를 높이는 것은 공급자의 횡포”라며 “건교부 재경부 소비자단체 등이 시민단체와 함께 분양가 감시기구를 만들거나 제3의 전문기관이 산정한 적정원가를 적용해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별로 땅값 등 건설원가를 공개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 하다. 해밀컨설팅 황용천사장은 “국세청 기준시가 수시고시제와 연계해 해당 지역의 적정 분양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함께 건설사가 시ㆍ군ㆍ구청장에게 분양가 책정과 관련한 증빙서류를 제출해 사전심의를 받는 절차를 부활하는 방법도 검토될 수 있으나 건교부의 반대가 거세 논란이 예상된다.
김혁기자
hyuk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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