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4월3일 제주도에서 좌파 민족주의 세력의 무장봉기가 일어났다.1년 뒤인 1949년 5월께야 일단락된 이 봉기는 무자비한 진압 과정에서 수 만명의 희생자를 낳았고, 그 여진은 6ㆍ25 전쟁 중에도 계속돼 1954년에 들어서야 제주도는 평온을 되찾았다. 4ㆍ3사건은 여수ㆍ순천 사건의 직접적 원인이기도 했다.
1948년 10월20일, 제주도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여수항을 떠날 예정이던 국군 14연대 병력은 진압 명령에 불복하고 김지회(金智會)중위의 지휘로 반란을 일으켜 일주일간 여수ㆍ순천 일원을 장악했다.
4ㆍ3사건의 성격은 복합적이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외세를 배격하고 통일된 자주정부를 수립하려는 민족주의 운동의 층위에 자리잡고 있다.
공식적 분단으로 이어질 남한만의 단독 선거(5ㆍ10 총선거)에 반대하는 투쟁은 선거가 다가오면서 남한 전역에서 일어났는데, 제주도에 파견된 서북지방 출신의 관민 합작 진압 부대는 미 군정청을 등에 업고 도민들을 잔혹하게 탄압함으로써 봉기를 점화시켰다.
봉기는 이내 섬 전체로 번졌고, 군정청과 뒤이은 이승만 정부는 군을 투입해 제주도 전역을 초토화했다.
1999년 말 국회는 ‘제주 4ㆍ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ㆍ3특별법)을 제정해 이 사건 희생자들에게 역사의 제 자리를 찾아줄 토대를 마련했다.
안치환씨가 1987년에 만든 ‘잠들지 않는 남도’라는 노래는 바로 이 4ㆍ3을 기리고 있다.
“외로운 대지의 깃발/흩날리는 이녘의 땅/ 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리/ 아! 반역의 세월이여/ 아! 통곡의 세월이여// 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