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주요 신문들은 의회에서 법안에 대한 투표가 실시되면 의원 개개인의 투표 현황을 자세히 보도하는 게 관례다.뉴욕 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의 경우 별도의 표를 만들어 어떤 의원이 찬성 또는 반대표를 던졌는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한다.
또한 특정 의원에 대한 프로필을 소개할 경우 학력이나 경력뿐 아니라 주요 법안에 대한 투표 성향을 별도로 병기해준다.
따라서 의원의 투표 행위는 줄곧 꼬리표처럼 평생을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미국을 경악시킨 지난해 9ㆍ11 테러 직후 미 의회는 테러응징 결의안을 채택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테러 분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무력을 사용토록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이 결의안에 상ㆍ하원을 통틀어 바버라 리(56ㆍ여ㆍ민주ㆍ캘리포니아)하원의원만이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져 파문이 일었다.
테러에 대한 분노와 보복열기가 하늘을 찌르던 당시 분위기에서 리의 반대표는 분명 ‘반역’이나 다름없는 행위로 여겨졌다.
그의 의원 사무실과 홈페이지에는 ‘반역자’라는 비난이 쇄도했고 심지어 살해 위협까지 잇달았다.
그러나 리 의원은 “군사행동만으로는 테러를 근절할 수 없다는 게 나의 소신”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바로 그 리 의원이 지난달말 집계 결과 전년 동기에 비해 2배나 많은 17만 8,000달러의 정치헌금을 모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여론조사결과 올 가을 선거에서도 재선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미 언론들은 이에 대해 지역구민들이 그의 소신투표를 높이 평가한 데 따른 결과라고 분석했다.
정치적 신념에 따른 리 의원의 투표 행위도 그렇거니와 이를 감싸 안아 줄 수 있는 정치문화가 기자에겐 신선하게 다가왔다.
정당 보스의 지시에 따른 줄서기 투표와 다른 견해를 내면 ‘해당 행위’로 치부돼 출당까지 당하는 한국 정치 풍토가 오버랩됐다.
윤승용 워싱턴특파원
syy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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