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무대는 많지만 좋은 작품과 좋은 배우의 만남은 드물다.서울시극단이 30일부터 공연 중인 ‘크루서블’(아서 밀러 작ㆍ 윤영선 연출)에서 남자 주인공 프록터로 나오는 강신구(33)는 이 걸작에 빛과 무게를 더한다.
극히 자연스럽고 힘있는 연기에서 단단한 내공이 느껴진다. 한마디로 미덥다.
공연시간 2시간 30분이 지루하지 않은 것은 팽팽한 긴장으로 짜여진 밀러 원작의 강력한 힘과 그것을 당당하게 버티는 배우 강신구의 존재감 때문이다.
‘혹독한 시련’을 뜻하는 ‘크루서블’은 17세기 미국의 한 농촌 마을에서 벌어진 마녀사냥 이야기를 통해 1950년대 미국을 휩쓴 매카시즘-공산주의자 색출 바람-을 비판한 작품이다.
한 소녀의 복수심에서 비롯된 거짓말이 마녀사냥 광풍으로 번지면서 순박한 농부 프록터를 덮친다. 그는 살기 위해 이웃을 고발하는 거짓 자백서를 쓰지만, 찢어버리고 교수대로 간다.
프록터는 영웅인가. 강신구는 달리 생각한다. 오히려 영웅으로 과장하기 싫다고 말한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살고 싶은 욕망에 갈등하지만, 어린 자식들한테 부끄러운 아버지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죽음을 택합니다. 양심이나 진실을 위해서가 아니지요. 죽음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나약한 존재로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제가 느끼는 만큼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속 깊은 배우는 위대하고 비극적인 인물로 보이기를 일부러 피함으로써 보통 사람의 용기와 이를 짓밟는 도그마의 횡포를 더욱 뚜렷하게 드러낸 셈이다.
‘느끼는 만큼’과 ‘있는 그대로’를 강조하는 강신구식 정직한 연기의 승리다.
서울예술대 연극과를 나와 91년 연극ㆍ영화의 해 개막작인 극단 현대예술극장의 ‘춘향’에서 이몽룡 역으로 데뷔했다.
현대예술극장에서 4년, 무소속 2년을 거쳐 97년 서울시극단 창립 단원으로 들어가 오늘에 이른다.
‘19 그리고 80’의 해롤드, ‘오레스테스 3부작’의 오레스테스, ‘벚꽃동산’ 의 로빠힌, ‘길 떠나는 가족’의 이중섭 등 주역으로 호평을 받았다.
연극에 눈 뜬 것은 고교 시절. 친구가 다니는 배우학원에 구경갔다가 연극의 매력에 빠졌다. 그동안 연극 말고 해본 일이 없다.
개그 작가와 PD로부터 개그맨이 되라는 유혹을 받은 적도 있지만 웃고 말았다. 아르바이트도 극장 관련 일만 했다.
벽제의 무대세트 제작소에서 톱질 망치질 하고, 오페라극장 천장에서 대포 만한 조명기 붙잡고 움직이느라 끙끙 대고…. 참 고지식한 배우구나 싶다.
서울시극단의 ‘크루서블’은 1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에서 계속된다.
(02)399-1647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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