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책공대에 다니는 학생인데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중국거주 한국 동포들은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 걸려오는 전화를 가장 두려워한다.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간절하고 절박한 목소리는 대부분 탈북자들의 목소리다.
지난해 장길수군 가족이 자유를 찾은 이후에도 이런 전화를 자주 받았지만 최근 탈북자 25명이 집단으로 한국행의 꿈을 이룬 이후 이런 전화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아마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치고 이런 전화를 안 받아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대표, 성직자, 언론인 등 신분이 노출되어 있는 경우는 더욱 심하다.
탈북자들은 만나서 드릴 말씀이 있다거나, 중요한 정보가 있다거나, 종교문제에 관해 말하고 싶다는 등의 구실을 대며 간청을 한다. 만나보면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돈이 아니면 밥’이다.
거절하자니 동포애와 연민이 뒷덜미를 잡는다. 더욱이 거짓말인줄 뻔히 알면서도 이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할 때가 많다. 중국에 오랫동안 거주해온 A씨는 최근 며칠 사이에 탈북자 3명을 만났다. 김책공대 2학년이라는 학생, 22살의 하사관, 노동자 출신이라는 북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행을 원하며 중국의 지방을 거쳐 3국으로 가는 교통비를 지원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이들은 ‘앵벌이’다. 수소문해 알아본 결과, 이들이 탈북자는 분명하지만 벌써 수개월째 중국을 떠돌며 정보제공 운운하며 한국인을 찾아 다니면서 피해를 주고 있다.
칭다오에 근무하던 한 성직자는 탈북자를 접촉하다 중국 당국의 경고를 받고 귀국한 경우도 있다. 남북분단의 비극이 이처럼 중국 동포사회에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송대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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