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구성체, 포스트모더니즘 등 한때 학계를 풍미했지만 언젠가부터 사라져버려 논의되지 않는 쟁점들을 학계가 재검토하기 시작했다.민예총 문예아카데미는 지난달 23일 ‘90년대 탈근대 이론의 평가와 현재적 의미’라는 주제로 월례 문예포럼 첫 회를 열고, 90년대 한국 지성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근대와 탈근대 논의를 비판적으로 정리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탈근대 이론은 인간의 합리적 이성을 기초로 세워졌던 근대에 대한 불신과 반성에서 시작한 담론.
국내서는 후기산업사회적 징후와 전통사회의 특성이 혼재된 가운데 탈근대 이론이 과연 근대를 뛰어넘는 대안적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여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었다.
진중권 ‘아웃사이더’ 편집위원이 초기 탈근대 논의를 이끈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의 저서들에 대해 서평 형식의 발제를 한 후 참석자들이 ‘근대/탈근대 논의의 의의와 전망’이란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진씨는 “본래는 급진적 사상이었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탈근대 사상의 수용이 실천적, 정치적으로 보수주의 성향을 지녀왔다”고 비판하고 탈근대 사상의 긍정성을 현재에 되살리기 위해 근대와 탈근대 사이의 생산적 대화를 제안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한국에서 탈근대는 물론 근대와 관련된 논의가 보수적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론이 너무 현실에서 동떨어진 채로 다루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민예총은 앞으로 ‘전통과 현대’(5월), ‘민족주의인가, 탈민족주의인가’(7월), ‘여성과 페미니즘 문제’(9월) 등 학계에 주요 화두였던 담론들을 주제로 한 포럼을 격월로 개최할 예정이다.
소장파 역사학자들은 1990년대 역사학계를 휩쓸고 간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논의를 한데 모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역사학’(푸른역사 발행)이라는 책을 최근 펴냈다.
“논의가 멈추고 정지한 듯한 지금이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을 논의할 적기”라는 것이 뒤늦은 출간의 이유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역사 연구에서 텍스트(사료 문헌)의 다양한 의미를 파악하는 해체주의 전략의 중요성과 텍스트에 대한 해석으로서 역사서술이 갖는 문학성을 강조한다.
이 같은 배경에서 일상생활사, 구술사, 미시사, 역사인류학 등이 국내에 잇따라 소개됐지만 역사에 대한 기존의 인식과 서술 경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어서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
이 책에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긍정과 부정, 옹호와 비판, 수용과 거부 사이에서 각각 조금씩 뉘앙스를 달리하는 의견들이 16편의 글에 집약되어 있다.
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도 다시 등장했다.
정성기 경남대 경제통상학부 교수가 최근 ‘사회구성체 논쟁의 부활과 전진을 위하여’라는 부제를 단 ‘탈분단의 정치경제학과 사회구성’(한울아카데미 발행)이란 책을 펴낸 것.
사구체 논쟁은 80년대 한국 자본주의와 한국 국가의 근본적 성격과 그것을 타파할 실천전략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대표적 담론으로, 국가독점자본주의와 중진자본주의가 맞선 가운데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론, 민중민주론, 주변부 자본주의론 등이 개진됐었다.
정 교수는 그 연장선상에서 이분법적인 근대인식론을 비판하면서 주체의 개념을 강조한 탈(脫) 근대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 과거 담론이 잇따라 학계의 조명을 받고 있는 이유에 대해, 이진우 계명대 철학과 교수는 “80,90년대 담론들은 학계의 중요한 논의였는데도 우리사회에 대한 경험적 자료나 분석 없이 이뤄져 금방 시들해진 측면이 크다”며 “그러나 최근 자생적 이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고 이념적으로도 냉철해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자연스럽게 과거 담론이 재논의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