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PC방은 시설이나 운영 노하우면에서 한국을 상징하는 정보기술(IT)수출상품으로 자리 잡았다.요즘 PC방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미국 일본 중국 베트남 등 해외에서 밀려드는 사업제휴 요청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한다.
이 추세대로라면 한국의 PC방이 세계를 석권할 날도 멀지 않았다.
동네 PC방도 스타크래프트나 리니지 등 컴퓨터 게임에 빠진 초ㆍ중ㆍ고생들로 언제나 인산 인해를 이룬다.
■ 컴퓨터가 생활 속으로 들어오기 전인 70~80년대에 아이들이 친구들과 할 수 있는 ‘게임’은 딱지치기와 구슬놀이가 고작이었다.
활동적인 남자애들은 공놀이나 자치기에 열중했고 여자애들은 고무줄 놀이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며 술래잡기를 즐겼다.
전통적인 아이들 놀이에 컴퓨터게임 만큼의 아슬아슬한 재미는 없었겠지만 밤잠을 잊고 빠져드는 강렬한 중독성 역시 없었다.
게임의 상대도 말 없고 냉정한 컴퓨터가 아니라 감정이 통하는 친구들이었다.
■ 그러나 이제 중ㆍ고생들의 여가 보내기는 컴퓨터를 빼 놓고 상상할 수 없게 됐다.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PC통신ㆍ인터넷을 하거나(29%), 컴퓨터 게임을 즐기고(24.5%) TV시청(17%)을 하며 여가를 보낸다.
책을 읽는다는 대답은 10%에 불과했다.
물질 문명의 발달이 인간을 소외시킨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컴퓨터로 인한 대화 단절과 가족의 해체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 생각하면 19세기 초 영국의 산업혁명기에 일어난 러다이트(Luddite)운동은 자동화 기계의 출현으로 실직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의 단순한 기계 파괴행위를 넘어서는 의미를 지닌다.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파괴하고 가족을 해체 시키는 기계의 반정신성에 맞서 싸운 전시대인의 저항이 새삼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200년이 지난 지금 인간성을 파괴하는 컴퓨터를 피해 차라리 컴맹이나 넷맹으로 살겠다는 현대판 러다이트족도 생겨나는 판이다.
이미 삶의 일부가 된 컴퓨터 앞에서 디지털 혁명과 잃어버린 정(情)과 삶의 질을 생각한다.
이창민논설위원
cm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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