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과이는 2002 한일월드컵에서 최대 이변을 일으킬 다크호스로 꼽힌다. 1960년대 이후 세번째 본선에 진출한 파라과이는 최고성적이 16강에 불과하지만 지난해 남미예선에서 보여준 가공할 파괴력을 바탕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파라과이는 최강 브라질을 홈에서 2-1로 격파했고 아르헨티나와는 두 차례 무승부를 기록, 남미의 빅3로 발돋움했다.
대표팀 구성도 역대 최강이다. 16강까지 올랐던 프랑스대회 출전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데다 당시 문제점으로 지적된 골결정력 부족을 신예 스트라이커 산타 크루스(20ㆍ바이에른 뮌헨)를 통해 보완, 공수의 균형을 갖췄다.
▼전력분석
조직력과 파워를 앞세운 점은 유럽스타일에 가깝다. 기본전술은 4-4-2. 골넣는 골키퍼 호세 칠라베르트(36ㆍ스트라스부르)가 이끄는 수비진이 탄탄하고 기습공격과 속공이 뛰어나다.
드리블이 좋은 미드필더들은 측면 깊숙이 치고들어가 센터링을 올려주거나 허를 찌르는 스루패스로 수비를 무너뜨린다. 수비진이 빈번히 공격에 가담, 강력한 헤딩슛을 날리기도 한다.
요즘은 칠라베르트가 최전방 투톱인 189㎝의 장신 산타 크루스와 호세 카르도소(30ㆍ톨루카)에게 단번에 볼을 연결시키는 기습전술을 연마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런던에서 열린 나이지리아와의 A매치는 파라과이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양팀 베스트멤버가 거의 출전한 이날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지만 파라과이가 후반 초반까지 공격적인 플레이로 경기를 주도했다.
파라과이는 경기초반 산타 크루스의 강 슛이 크로스바를 맞고 나왔고 전반 24분 중앙수비수 카를로스 가마라(31ㆍAEK아덴스)가 상대진영에 침투해 코너에서 올라온 볼을 헤딩 슛, 선취골을 뽑았다.
이 후 오른쪽 미드필더 디에고 가빌란(21) 등이 중거리포로 나이지리아 문전을 위협했다. 그러나 후반들어 수비에 치중, 수세에 몰리다가 37분 동점 페널티킥을 내주었다.
하지만 가마라-가빌란-산타 크루스 등을 앞세운 4백 수비라인의 활약은 뛰어났다. 수비의 중추 가마라는 최전방까지 침투, 위협적인 헤딩슛을 터뜨렸다.
머리와 발을 자유자재로 쓰는 산타 크루스의 공간확보와 슈팅력, 가빌란의 측면돌파와 중거리슛도 돋보였다.
예선서 비신사적 행위로 징계를 받아 본선 1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칠라베르트 대신 후반에 나온 신인 리카르도 타바렐리도 주전 골키퍼 자리를 꿰찰만큼 걸출했다.
▼약점 및 예상성적
골결정력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슈팅빈도에 비해 성공률이 떨어졌다. 말디니 감독도 “이런 공격이라면 몇 골은 더 넣었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특히 1골을 지키기 위해 미드필드진을 수비쪽으로 후퇴시킨 후반전의 전술은 문제였다. 중원을 내주다 보니 상대의 거센 공격에 밀려 주도권을 빼앗겼다.
본선 B조에 속한 파라과이는 남아공화국 스페인 슬로베니아 스페인과 경기를 하는데 스페인 다음으로 16강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8강 이상의 성적을 내려면 전반의 공격대형을 후반까지 흐트러짐 없이 끌고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진용기자
hub@hk.co.kr
■칠라베르트 "다음 목표는 대권"
“내 꿈은 대통령.” 파라과이대표팀의 주장 호세 칠라베르트가 기회있을 때마다 밝히는 포부다. 괴짜의 실없는 호언쯤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이미 올해 월드컵을 화려한 성적으로 장식한 뒤 프로선수생활을 접고 정계에 진출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국민영웅이자 팀의 상징이다. 상대선수나 심판을 겨냥한 거침없는 언행이나 동료의 골이 터질 때마다 그물이 찢어져라 매달리며 열광하는 모습은 단지 쇼맨십만은 아니다.
오히려 13년 동안 대표팀 맏형 노릇을 하면서 자물통처럼 든든하게 골문을 지켜주고 있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받아들여진다.
매일 120회 이상 프리킥 연습을 통해 전문키커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점도 국민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
그렇다고 단순히 볼만 차는 축구선수가 아니다.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군부 인사들이 축구계에 유언무언의 압력을 넣을 때마다 출전 거부로 맞서는 등 정치적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1999년 파라과이에서 열린 코파아메리카대회에서 파라과이축구협회가 대회 경비책임자로 아르가냐 전 부통령 암살을 배후 조종한 퇴역 장성 오비에도를 임명하자, 이에 항의해 대표팀 소집에 불응하기도 했다.
그는 이 대회가 끝난 뒤 “2002년 월드컵을 위해 대표팀 복귀를 결심했다”고 발표했다.
칠라베르트는 “대표팀은 강력하고 단합돼 있다. 최고성적을 낼 준비가 돼 있다. 16강을 넘어 우승을 향해 전진할 것이다”고 말한다.
이런 장담이 어느 정도 통할지 두고 볼 일이지만 그의 대통령 꿈 실현 여부는 파라과이 성적과 상관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말디니 감독
“파라과이는 16강은 물론 8강 진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본선을 6개월 앞둔 지난해 12월 파라과이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이탈리아 출신 체사레 말디니(69) 감독은 자신만만하다.
그는 3개월간 선수들의 기량향상을 지도한 결과, 파라과이는 유럽 어느 팀과 맞붙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나고 사기도 충만해 있다고 말한다.
말디니 감독은 1960년대부터 이탈리아 축구를 주름잡은 인물. 62년에는 이탈리아 대표 선수, 82년엔 대표팀 코치, 98년엔 대표팀 감독으로 월드컵에 세번이나 출전했다.
98년 월드컵 땐 8강전에서 홈팀 프랑스에 승부차기끝에 패했지만 명조련사로서 그의 명성은 여전하다.
파라과이축구협회가 지난해 11월 월드컵 본선티켓을 따내고도 막판 지역예선에서 부진했던 우루과이 출신 세르히오 마르카리안 감독을 전격해임, 그를 긴급 초빙한 이유는 바로 그의 능력을 믿기 때문이다.
말디니 감독은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 흐트러진 전열을 추스려 파라과이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파라과이의 성적은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전임 감독시절인 지난해 9월 볼리비아를 5-1로 제압한 이후 파라과이는 A매치에서 승리의 기쁨을 맛본 적이 없다.
올해 들어서도 볼리비아와 졸전 끝에 2-2로 간신히 비겼다. 지난달 26일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는 선제골을 넣고도 비겨 “전형적인 이탈리아식 무승부 축구전술”이라며 말디니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약한 공격력을 보완할 특단의 전술개발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적지 않다. 때문에 생애 네번째 월드컵 참가를 명예롭게 마무리하겠다고 다짐하는 말디니가 어떤 비책으로 파라과이의 돌풍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이범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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