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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다시본다] 제1부 팍스 아메리카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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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다시본다] 제1부 팍스 아메리카나(3)

입력
2002.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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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계화와 아메리칸 스탠더드세계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그리고 그 바람의 뒤편에는 미국이 자리잡고 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자들은 세계화가 지구상의 복지증진과 빈곤 해소의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빈곤과 불평등의 심화를 낳고 있다면서 반발하고 있다.

세계화의 과실은 나눠받지 못하면서 ‘아메리칸 스탠더드’로의 전환을 강요받아 고통을 겪는다는 비명도 터져 나온다. 세계화와 미국, 그 관계의 본질은 무엇인가. 문화, 환경, 안보, 기술 등 여러 영역에서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그 핵심 동력인 경제적 세계화에 초점을 맞춰보고자 한다.

세계화 문제에 대한 접근은 사상적인 깊이와 역사적 성찰을 요구한다. 사상적인 차원에 있어서는 시장과 국가라는 인간생활의 두 가지 핵심 조직원리간의 부딪힘의 문제가 게재돼 있다. 시장은 사람과 사람을 엮어 통합하고 기능적으로 공간적으로 팽창해나가고자 하는 속성이 있고 이것이 바로 세계화를 심화한다.

그런데 국가는 특정 영토라는 공간을 전제로 그 안의 인적, 물적 자원들을 배타적으로 통제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시장기능 확대의 표현으로서의 세계화와 국가는 상호 간에 긴장관계에 놓이기 마련이다. 또 양자 간의 관계 정립의 문제를 놓고 자유주의, 중상주의, 마르크시즘이라는 사상적 흐름들이 갈라진다.

역사적인 맥락에서는 최소한 150년 전 정도까지 거슬러갈 필요가 있다. 1846년 영국의 곡물법(The Corn Law) 폐지 이후 자유무역질서가 유럽에 자리잡기 시작했고 그 이후 상호의존과 세계화의 심화는 1차 대전 발발 직전까지 진행되었다.

이 시기는 이른바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신념이 강했던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시대였다. 그런데 1차 대전에서 2차 대전에 이르는 20년 간의 시기 동안 세계화의 심도는 약화했고 모든 국가들이 자율성과 국내복지를 강조하다가 결국 2차 대전이라는 파국을 맞았다.

전후 국제경제질서의 골격을 짠 미국의 화이트, 영국의 케인즈는 세계화가 가져다 주는 이득과 국내적 복지의 양대 목표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브레튼우즈(Bretton Woods) 체제를 출범시켰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원래 무역의 자유로운 흐름은 강조하지만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은 국내경제의 자율성과 복지정책 추구를 교란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이 같은 기본 전제를 깨고 80년대 초부터 이른바 금융세계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주역이 다름 아닌 미국이었다.

유럽과 일본의 급성장으로 미국의 상대적인 무역경쟁력이 약화하자 로널드 레이건 정부는 미국이 최고의 경쟁력을 점유하고 있던 금융부문의 개방을 추진하는 전략으로 나아갔다. 여기에 전통적인 금융국가인 영국이 편승하게 되었고 이것을 뒷받침해준 것이 이른바 레이건_대처리즘과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였다.

금융의 세계화는 더 나아가 국제경제의 전 영역에 걸친 세계화를 심화했고, 대신 국내적 복지 추구라는 목표는 세계 도처에서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결국 미국이 세계경제의 게임의 규칙을 바꾸어버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세계자본주의는 19세기 후반 빅토리아시대의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와 비슷한 방향으로 회귀하고 있다. 역사는 결국 순환하는 것인가.

미국이 일으킨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제도적 경직성을 드러내고 있다가 호되게 당한 것이 90년대 일본과 동아시아였다. 이들 국가들은 금융부문을 자생력이 있는 산업이 아니라 경제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해왔다.

그 결과 취약성과 비효율성이 누적됐다. 일본은 80년대 초 금융세계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을 때 제도정비를 서둘러야 했는데 허송세월을 하다가 90년대 이후 10여 년 간 경제의 추락을 목도하고 있고, 한국과 동남아 국가들도 97년 치명적인 경제위기를 당했다.

당시의 위기는 미국 정부의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의도적 음모의 결과가 아니라, 금융체제의 영미 모델이 동아시아 모델에 대한 의도하지 않았던 우회 공격을 가한 결과였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주도했던 영미식 자본주의 모델의 승리가 비용 없는 승리만은 아니었다. 동아시아 위기는 미국이 주도한 세계화가 얼마나 허약한 국제제도적 기반 위에 진행되고 있는지를 드러냈다. 시장은 정치적 공백 속에서는 결코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한 국가의 경제가 효율적으로 작동하려면 공정경쟁의 집행을 위해, 통화ㆍ재정정책을 통해 경기 사이클의 파고(波高)를 낮추기 위해, 그리고 사회안전망의 제공으로 혹독한 경쟁에서의 낙오자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고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세계화가 추구하는 단일 시장도 제대로 작동하려면 세계정부가 존재하고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근대국가는 주권을 양도하기 싫어하고 세계정부는 여전히 존재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가령 세계정부가 있어 경제위기를 경험하는 국가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실업자를 구제해준다면, 물질적 이득을 가져다주는 세계화를 누가 반대하겠는가.

97년 동아시아 위기에 대한 미국식 해법은 세계금융체제의 불공정성과 비효율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채무국은 엄청난 고통과 부담을 짊어졌는데 빚을 잘못 준 은행들은 거의 처벌이 없었던 불공정성을 드러냈고, 위기의 예측과 처리 과정에 있어서도 비효율성을 드러냈다.

그래서 국제통화기구(IMF) 체제의 정통성이 약화하고 제3의 대안으로 아시아통화기금(AMF)과 같은 지역적 해결책이 거론되기도 했다. 즉 미국이 앞장서 만들어낸 글로벌 차원의 제도에 대한 반발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위험은 이미 60여 년 전 칼 폴라니(Karl Polanyi)의 ‘대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에서 예견되고 있었다.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19세기의 맹신은 사회적 약자의 보호장치를 하나씩 하나씩 제거했고, 이에 따른 총체적 사회의 위기와 함께 파시즘, 나치즘이 등장한 뒤 결국 2차 세계 대전이라는 파국을 낳았다.

그렇다면 수 년 전부터 시작해 날로 격화하는 반세계화 시위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과거 시장의 공격을 받은 사람들이 나치즘에서 피난처를 찾으려 했듯이 지금 세계화에서 도피하려는 사람들은 종교적 근본주의와 종족적 민족주의로 달려가고 있는 게 아닐까.

1년이 채 못 되어 태국의 금융위기가 전 세계의 경제 위기로 확산되는 유례 없는 사건도 우리에게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오동잎이 떨어지고 있으니 가을은 진정 다가오고 있는 것인가. 미국, 아니 인류는 아직 이 같은 과제를 풀어나갈 지혜와 정치적 역량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윤영관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아메리카 핸드북 / 워싱턴 컨센서스

‘워싱턴 컨센서스(합의)’라는 말은 미국이 다른 나라에게 요구하고 있는 경제 개혁 처방, 또는 경제 이념을 지칭한다. 워싱턴에 재무부 등 미 정부 부처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IBRD) 등 국제금융기구가 모여 있기 때문에 미국의 관계, 경제학계, 금융계가 합의한 미국식 시장경제의 대외확산 전략을 상징적으로 뜻한다.

일본 슈에이(集英)사가 편찬한 시사사전 ‘이미다스’는 “미국은 90년대 들어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이념과 철학에 따라 세계화를 추진하며 미국 기준의 경제개혁을 강요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적고 있다.

반 세계화 진영의 구호나 출판물에도 자주 쓰이는데 이 때는 ‘세계 경제를 미국 기업이 진출하기 쉽게 만들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금융자본주의의 음모’라고 풀이된다.

하지만 원작자의 뜻은 그게 아니었다. 미국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IBRD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정치경제학자 존 윌리엄스는 89년 남미 경제를 위한 정책보고서에서 10가지 개방개혁처방(표)을 제안하면서 제2장의 제목으로 이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미국에서도 부정적인 어감으로 사용된다. 조지 소로스는 이를 ‘시장근본주의’이라고 비난했다. 1999년 노벨상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스티글리츠가 개도국에 고금리 정책을 강요하는 것에 반대하며 IBRD에서 사퇴할 때도 이 용어를 거론했다.

그러자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등 언론들은 ‘워싱턴 혼란(Confusion)’ ‘워싱턴 불화(Dissensus)’라고 비아냥댔다.

견디다 못한 윌리엄스는 수 차례 기고문 등을 통해 “구체적인 정책 제안이 어떻게 이데올로기 용어로 변질될 수 있는가”라고 항변해 왔다. 그러나 그도 2000년에 쓴 글에서는 자포자기하는 듯했다.

남미의 한 경제학자에게 말을 원래 뜻대로 써주도록 설득하자 돌아온 답변은 “그 단어의 지적소유권이 이미 당신에게서 인류에게로 넘어갔다”는 것이었다.

유승우기자

sw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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