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김종인 칼럼] 블랙먼데이와 9ㆍ11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김종인 칼럼] 블랙먼데이와 9ㆍ11

입력
2002.04.01 00:00
0 0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미국 뉴욕 증시의 다우지수는 개장과 동시에 200포인트가 하락하더니 낙폭이 점점 커져 결국 전날대비 508포인트나 폭락했다.이는 월가 역사상 하루 동안의 지수 하락 폭으로는 최대치였다.

블랙 먼데이(Black Monday)로 명명된 이 사건은 일본을 제외한 선진 각국의 증시를 동반 폭락시키면서 월가의 붕괴가 세계경제 공황을 유발했던 1929년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이 때 선진 각국들은 증시안정을 위해 금리를 인상했다.

그러나 그 후 비교적 짧은 기간에 증권시장의 안정이 이뤄져 금리는 증시폭락 이전 상황으로 회복됐고 경제상황에도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이 무렵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시작돼 그 해 12월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됐다.

취임 직전인 1988년 2월, 나는 대통령 당선자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세계경제가 87년 블랙 먼데이로 인해 1930년대처럼 대공황으로 갈 염려가 있으므로 가능한 한 우리경제는 성장위주로 운영돼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어불성설이었다. 블랙 먼데이의 충격은 일시적이었고 우리 경제는 3저 효과와 올림픽 특수 때문에 오히려 경기과열을 염려해야 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성장정책은 경기과열을 낳았고, 그 결과 물가 상승, 부동산 투기, 임금 인상을 초래했다.

그러나 86년부터 시작된 국제수지 흑자기조 지속은 경제정책 담당자들로 하여금 한국경제의 실상을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한 채 안이한 사고만을 갖게 했다.

당시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국제수지 흑자가 지속될 것이라 속단해 한국경제의 조기 선진국 진입과 채권국으로의 전환을 예고했다.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연구기관이나 경제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이와 함께 정부는 국제수지 흑자로 발생한 외환관리를 위해 해외투자 자유화, 여행 자유화, 해외부동산 투자 자유화 등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환상이 얼마 지속되지 못하고 1989년 국제수지 흑자가 1988년에 비해 급격하게 감소하자 그 해 가을에 가서야 경제정책 담당자는 비로소 한국경제의 위기를 자인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에서 이슬람 과격파들에 의한 테러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모든 나라의 증권시장에서 주가를 폭락시켰고, 세계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하는 미국경제의 전망을 어둡게 만들었다.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은 크게 증대됐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 관료들은 불확실성의 한 측면만을 보고 대비책을 마련했다.

세계경제 성장이 일정부분 부진에 빠질 것이니 빨리 국내경기를 부양하자는 것이었다.

예의 고질병이 도진 것이다.

성장률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 약속 때문에 적극적 재정투입을 자제하던 정부가 이를 계기로 적극적 재정투입으로 선회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구조조정이라는 말은 사라지게 되어 지금은 4대부문의 구조개혁이 정말 완료되었는지 묻는 사람도 없고 정부 또한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남은 것은 80년대 말처럼 경기과열, 부동산투기, 임금인상 등의 부작용 뿐이다.

돌이켜보면 조그만 일에도 깜짝깜짝 놀라 부산을 떨고, 성장제일주의 처방을 들이대는 경제관료들의 자세는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한국경제의 근본적 문제를 직시하고 본질적 해결책을 꾸준하게 추진하지 못하고, 조그만 성과에 자만하며 약간의 흔들림에 두려워한다.

은행 몇 개를 구조조정 한 뒤 그 맛에 취해 본격적 경기부양으로 선회한 98년 9월의 경제정책이나, 9ㆍ11사태에 호들갑을 떨면서 총력 경기부양책을 편 것이 좋은 예다.

그러나 현실의 경제문제에 대한 깊은 인식 없이 그때그때 상황대처에 급급하여 내놓는 정책의 결과가 어떤가는 이미 우리가 싫도록 경험한 바다.

정책당국이 현 상황에 안주하지 말고 지속적 안정성장의 기반구축에 노력하여 또다시 경제위기라는 말이 반복되기 않기를 바란다.

前 청와대 경제수석 비서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