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해낼 수 있을까.12일 저녁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서울시향 정기연주회에서 러시아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27)가 연주할 곡을 살펴보면 기가 막혀 말이 안나온다.
마르크 에름레르의 지휘로 한꺼번에 피아노협주곡 세 개, 그것도 힘들기로 유명한 차이코프스키 1번, 라흐마니노프 2번, 프로코피에프 3번을 한다.
모두 설명이 필요없는 걸작 중의 걸작이지만, 피아니스트로서는 하나만 해도 기진맥진해서 뻗어버릴 만한 곡들이다.
기교의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고, 엄청난 집중력과 스태미나가 없으면 엄두조차 내기 힘든 선곡이다.
‘건반 위의 서커스’를 예고하는 이 ‘엽기적인’ 프로그램은 마추에프가 직접 제안한 것이다.
교향악단 정기연주회는 서곡과 협주곡, 교향곡을 하나씩 고루 넣는 것이 일반적이지, 한 피아니스트를 위해 협주곡 세 개만으로 짜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덕분에 ‘러시아 3대 피아노협주곡’이라고 할 만한 곡들을 한 자리에서 듣는 행운을 누리게 됐다.
이 놀라운 피아니스트 마추에프는 1998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자로, 2000년과 2001년 서울시향과 협연하면서 한국에 얼굴이 알려진 신예다.
194Cm의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타건, 어려움이라곤 전혀 모르는 듯한 초인적인 기교, 숨쉬듯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는 음악성, 관객을 행복하게 만드는 무대 매너까지 두루 갖췄다.
2000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으로 전율을 안긴 데 이어 2001년 리스트의 피아노협주곡 두 곡을 한꺼번에 연주해 다시 한 번 관객을 경악시켰다.
무엇보다 음악을 즐기면서 연주하는 모습이 즐겁다.
특히 앙코르로 직접 작곡한 재즈풍의 곡을 연주할 때 드러나던 장난끼와 믿기지 않는 테크닉에 관객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환성을 지르며 발을 굴렀다.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입을 벌린 채 넋을 잃고 쳐다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마추예프의 두 차례 내한공연을 모두 본 피아니스트 채정원은 “숨이 멎고 머리칼과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듯한 잊을 수 없는 충격이었다”며 “테크닉과 음악성이 그처럼 균형있게 조화를 이룬 피아니스트는 극히 드물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지난해 ‘건반 위의 낭만’이란 이름으로 슈만, 그리그,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세 개를 하루 저녁에 연주해 화제를 모았던 피아니스트 김대진도 “아직 나이가 어려 음악적 성숙은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놀라운 연주자임에는 틀림없다”고 말한다.
지난해 내한연주 이후 마추예프 초청 경쟁이 붙었다. LG아트센터가 마련하는 11월 12일 초청 독주회 말고도 민간 기획사 서너 곳이 공연을 추진 중이다. (02)3991-629.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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