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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11)방송에 출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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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11)방송에 출연하다

입력
2002.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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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이란 이름 하나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무명이면 그만큼 홀대 받기 마련이다.TV 출연 전에 겪었던 사연 한가지만 소개하겠다.

1970년대 말 외딴 지역으로 공연을 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 조그만 버스에 나와 트위스트 김, 체리 보이가 타고 있었는데 헌병에게 불심검문을 당했다.

헌병이 물었다. “당신 이름이 뭐요?” “트위스트 김입니다.”

헌병 얼굴이 벌개졌다. “당신 지금 나하고 장난치는 거야? 세상에 트씨가 어딨어?” 헌병이 또 물었다.

“당신은 뭐요?” “체리 보이인데요.” 헌병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거 안되겠군. 모두 내려. 그 쪽도.”

이런 내게 서광이 비치기 시작한 것은 관광열차라는 서울 명동에서 꽤 유명한 술집에서 MC로 일하던 1979년 여름이었다.

당시 쇼 프로에서 이름을 날리던 MBC 전호중 PD가 술을 마시러 왔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웃으면 복이 와요’에 출연해달라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 받아본 TV 출연 제의였다.

그러나 결과는 최악이었다. 악덕사장 역을 맡아 출연은 했지만 시청자 항의전화가 빗발친 것이다.

“어디서 그 따위 구역질 나는 놈을 출연시키느냐”는 내용이었다.

MBC 자체 평가에서도 내가 방송용 인물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고, 이런 나를 기용한 전PD도 프로그램에서 쫓겨났다.

이후 영광과 시련이 차례로 찾아왔다.

의기소침해 있던 내가 딱했는지 누군가 나를 KBS 곽명세(郭明世ㆍKBS 시청자센터장)PD에게 소개했고, 곽PD는 나를 ‘여의도 청백전’에 출연시켰다.

이 프로그램에서 나는 처음으로 ‘수지 큐’를 선보였다.

처음 보는 코미디언인데다 엉덩이를 뒤로 빼고 걷는 폼이 눈길을 끈 모양이었다. 1주일 후 KBS 공개 홀에는 나를 보려는 탤런트들이 새까맣게 몰렸다.

그런데 일이 잘못되려고 그랬는지 당시 잘 나가던 TBC 쇼 프로 극작가 김일태(金日泰)씨에게 조그만 그림 선물을 한 게 화근이 됐다.

“어디서 배운 버릇이냐”고 단단히 야단을 맞았다. 며칠 후 송 해 선배가 운현궁 TBC 스튜디오로 나오라고 할 때까지 나는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후. 송 선배의 지시로 TBC 스튜디오에서 바닥청소도 하고 커피 심부름도 하고 있었는데 김경태(金慶泰ㆍ95년 작고)PD가 송 선배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누군데 맨 날 왔다 갔다 하는 거요?” 송 선배는 침이 마르도록 나를 칭찬했다.

그렇게 해서 출연한 프로가 바로 TBC ‘토요일이다 전원출발’이다. 이 때가 1980년 2월이었다.

당시 그 프로는 코미디언 이상해를 중심으로 서수남 하청일 김세환 윤수일 등이 이끌고 있었는데, 내가 맡은 역할은 ‘윤수일의 타잔’ 코너의 대사 한 마디 없는 엑스트라였다.

얼굴에 시커먼 칠을 하고 인디언 복장으로 그냥 서 있기만 하면 되는 역할이었다.

윤수일이 단 위에서 “아아아아~”를 외치며 밧줄을 잡고 내가 서있는 호숫가로 날아오는 순간, 갑자기 조연출이 이상한 수신호를 보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앞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눈깜짝할 사이에 윤수일과 부딪혀 호숫가에 풍덩.

또 잘못됐다 싶어 건너편 언덕으로 황급히 올라가는데 이게 웬일인가. 방청석에서 폭소가 터졌다.

이 사건 후 나는 정확히 2주일만에 스타가 됐다.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일이지만 내 예명이 주일(酒一)에서 이주일로 바뀐 것은 이 때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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