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廣島)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던 1945년 8월. 당시 히로시마 인근 료조(兩城)소학교 5학년이었던 나는 원자폭탄이 떨어진 지점,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에서 9㎞ 정도 떨어진 산사에 몸을 피해 있었다.번쩍거리는 빛과 진동, 그리고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버섯구름. 신비한 경험이었다. 사람들의 죽음이 있었지만, 그때부터 나는 물리학과 떼놓을 수 없는 운명이 됐다는 생각이다.
그로부터 14년 뒤.
내가 1958년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할 때의 실험 논문 주제는 중성미자(neutrino)를 동반하는 베타 방사선에 대한 연구였다.
아마도 원폭 투하를 경험했던 것이 이 연구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그 뒤로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내 물리학 연구의 길과 함께한 중성미자 연구는 지금까지도 나를 설레게 한다.
앞의 글에서도 말했듯이 중성미자 연구는 50년 이상 입자 물리학의 핵심 주제가 되어 왔다.
중성미자는 또 천문학이나 우주론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주의 탄생과 진화를 설명하는 빅뱅(Big Bang)이론에 의하면 현재 우리 우주에는 대폭발 후 1초 뒤 생성된 수많은 중성미자들이 균일하게 분포돼 있다.
만약 중성미자에 질량이 있다면 우주를 구성하는 암흑물질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만큼 중성미자의 질량과 성질 규명 연구는 중요하다.
지금까지 내가 발표한 120여 편의 논문 중 약 40편이 중성미자의 질량 유무를 판별할 수 있는 진동(oscillation)에 관한 것이다.
이는 표준이론에 대한 거듭되는 확인의 일환이었다.
입자 물리학의 가장 기본적인 모델인 표준이론은 1967년 와인버그, 살람, 글라쇼우 등이 확립했다.
표준이론은 우주에 존재하는 네 개의 힘 중 강한 상호작용, 약한 상호작용, 전자기력을 함께 설명하며 쿼크처럼 전자, 뮤온, 타우가 각각의 중성미자와 쌍을 이루고 있다는 내용이다.
수십 년간의 실험에서 거의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던 표준이론은 에너지가 높은 영역에 적용하면 여러 가지 치명적인 결함을 드러낸다.
이 결함을 보완하는 이론이 바로 요즘 회자되는 초대칭성 이론, 통일장 이론, 초끈 이론 등이다.
이렇게 표준이론을 보완하면 중성미자는 아주 작게나마 질량을 갖게 되고, 중성미자의 질량이 없다고 가정한 표준이론은 수정돼야 하는 것이다.
중성미자는 어떤 입자일까? 중성미자는 가속기와 원자로에서도 인공적으로 생성되지만, 태양이나 블랙홀 근처 초신성 등에서도 계속 만들어진다.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관측할 수 있는 중성미자는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는 태양의 중심부에서 주로 생성된다.
밀도가 높은 태양 중심부에서 중성미자가 뛰쳐나가는 것은 원래 어려움이 있지만, 중성미자는 상호작용이 매우 약해 생산되는 즉시 바깥으로 튀어나온다.
1초 동안 지구 표면에 도달하는 중성미자의 양은 1㎠당 10의 11승 개이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수이지만, 실제 관측은 매우 어렵다.
나의 연구는 기존에 존재했던 진동을 통한 중성미자 질량 유무 판단법의 문제점을 보완, 최초로 기하학적으로 설명했던 부분이다.
1980년대에는 표준이론을 제창했던 와인버그 교수와 직접 토론하며 진동에 의한 중성미자 질량 판단법을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그도 기하학적인 설명에 어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만큼 힘든 연구였지만 내가 예측했던 결과가 나오면서 보람이 생겼다.
이 같은 결과는 중성미자 검출기를 대용량으로 갖추면서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의 레이 데이비스는 1970년대부터 중성미자를 측정했다.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홈스테이크의 폐광에 650톤의 염화탄소통을 넣어 전자 중성미자를 검출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론상 예측되는 양의 1/4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일본 가메오카(龜山)에 있는 중성미자 검출기 슈퍼 가미오칸데에서도 비슷한 연구가 진행됐다.
이 검출기는 폐광동굴에 무려 5만톤의 물을 채워 전자 중성미자나 뮤온 중성미자가 지구를 통과하면서 물질과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전자나 뮤온을 검출하는 장치이다.
이곳에서는 예상치의 50% 정도의 중성미자가 검출됐다.
과연 어떻게 된 것일까?
첫째, 왜 이렇게 모두 이론치보다 작은 수가 관측이 되는가?
둘째, 왜 검출기의 물질에 따라 감소율이 다른가? 그리고 과연 이론치는 맞는가?
여러 문제가 제기되면서 오랫동안 논란이 많았지만 지금은 결론이 내려졌다.
쿼크와 같이 중성미자가 질량이 있다면 이들은 생성된 후 진동, 즉 탈바꿈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자 중성미자가 뮤온 중성미자로 바뀌는 것이다.
위에 이야기한 검출기는 이 뮤온 중성미자의 검출이 불가능하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탈바꿈된 전자 중성미자들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검출기마다 다른 에너지를 가진 중성미자를 관측하는데, 에너지에 따라 진동율이 변해 다른 측정치가 나온 것이다.
1998년에는 가메오카 검출기가 우주선에서 발생되는 중성미자 측정을 통해 이를 뒷받침하는 결과를 발표했다.
일본의 연구진은 나와 수십 년간 친분을 갖고 이론과 실험의 공조를 추구했다.
뒤이어 지난해 6월 캐나다에 있는 중수(heavy water) 검출기는 계산치가 맞다는 실험결과를 발표했다.
이로써 모든 의문이 해결되며 중성미자가 질량이 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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