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마을 농가 절반이 빈집이 될 겁니다.”29일 오후 충남 청양군 화성면 화강리에 있는 일명 ‘물편이’ 마을을 찾았다.
면 소재지에서 2㎞가량 떨어진 이 마을은 야트막한 산자락을 뒤로 하며 20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하지만 마을에 들어서도 사람을 찾아 볼 수 없다. 길을 물어볼 사람조차 없다.
현재 이 동네에 빈집은 모두 5채.
마을 이장 홍성희(52)씨는 “사람들이 기회만 있으면 뜰 생각을 하고 있고 남아있는 사람도 대부분 고령자여서 이들이 세상을 뜨면 마을은 온통 빈집 천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옆 마을 화암리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78가구 23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비교적 큰 마을이지만 빈집이 14채나 된다.
마을입구의 한 폐가는 방문이 떨어져 나가고 벽이 금간 채 수년째 방치돼 있지만 집주인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해 철거도 못하고 있다.
농촌이 텅텅 비어 가고 있다.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제는 한계 상황을 향해 치닫고 있다.
2000년 현재 충남지방에만 빈집이 2만 채에 달하고 전국적으로는 16만8,200여채에 이를 정도로 빈집문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도가 붙어 빈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빈집과 함께 주민들의 고령화도 심각하다.
물편이 마을의 경우 20가구 가운데 대부분이 60대 이상으로 독거노인 혹은 노인부부 세대이다.
30대는 한명도 없다. 자연히 마을에 큰 일이 생기면 일할 사람이 없다.
한 주민은 “마을에 초상이 나면 70살 노인이 상여를 메야 할 판”이라고 혀를 찬다.
빈집문제는 농민들의 이농현상과 고령화 추세에 비례해 날로 심각해 지고 있다.
농사짓는 것으로는 먹고 살기가 힘들기 때문에, 농촌에서는 아이들 교육을 시킬 수 없기 때문에 농민들은 농촌을 떠나고 있다.
이 같은 문제점을 알고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해결책이 없다는 것도 이농을 부추기고 빈집을 양산하는 큰 원인이다.
사람이 나가기는 해도 들어오지는 않는 기구한 현실이 초래한 빈집문제는 결국 오늘날의 농촌문제를 함축하는 상징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화암리 이장 정각현(52)씨는 “농촌 사람들은 참 불쌍하다.
쌀값이 떨어져 특용작물을 재배하면 또 가격이 폭락하니 죽지 못해 살고 있다”며 “이장인 나도 객지에 먹고 살만한 일자리만 있다면 당장 떠나고 싶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희집(53) 화성면사무소 계장은 “지속적인 농민 유출을 막지 않는다면 농촌붕괴는 시간문제”라며 “교육환경 개선과 농가 소득 보장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허택회기자
thheo@hk.co.kr
이준호기자
junhol@hk.co.kr
■"4만명은 지켜라"
‘인구 4만명 마지노선을 지켜라’
충남 청양군이 급격한 인구감소로 군세가 위축되자 인구 늘리기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현재 청양군의 인구는 4만여명으로 충남도내에서 가장 적다. 이는 천안시 쌍룡2동의 6만1,297명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여기에 매년 1,000여명씩 줄어드는 감소 추세를 감안하면 조만간 인구가 4만명 이하로 떨어질게 분명하다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청양군은 인구 4만명을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관내 도립 청양대 학생들의 주소지를 청양군으로 옮기는 것이다.
군은 주민등록법상 ‘30일 이상 거주자에 대해서는 전입신고를 해야 한다’는 규정을 근거로 대학의 협조를 받아 기숙사 학생들의 주민등록을 이 지역으로 옮기도록 적극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학생들이 협조해 준다면 당분간 인구 4만명선 유지는 무난할 전망이다.
군은 또 공단조성을 통한 공장유치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1개의 공장을 유치하면 30~40명의 인구유입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미 조성한 운곡공단에 공장을 유치하기위해 기업 유치팀을 수도권지역에 파견, 적극적으로 ‘공단세일’을 하고 있다.
새로 마을로 전입한 주민에 대해서는 세제 및 공과금 감면, 쓰레기봉투 무료제공 등의 혜택 제공도 적극 고려하고 있다.
김의환 자치행정과장은 “은퇴한 도시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청정한 자연환경을 조성하면 장기적으로 인구가 증가할 것이라는 희망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청양=허택회기자
thheo@hk.co.kr
■귀농 4년 실컷 고생 2억 빚만…"
“정말 지긋지긋해요. 빚만 정리하면 떠날 겁니다”
귀농(歸農) 5년차인 김명규(41ㆍ충남 부여군 세도면)씨는 그동안 정성껏 작성한 영농일지와 농협대출통장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
1998년 도시에서 운영하던 학원을 접고 고향에 돌아온 그는 4년 만에 빚만 2억원이 넘는 ‘대실패’를 맛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귀농 초기 3,000만원의 농협 영농자금으로 방울토마토 농사를 시작했다.
시설원예 기술을 배우기 위해 전국의 독농가를 찾아 다녔을 정도로 열의에 찼던 그는 첫해와 이듬해 까지는 순탄한 귀농생활을 했다.
토마토 가격이 좋아 논농사이상의 수입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 10㎏ 1상자에 2만원 이상 하던 토마토 값이 3,000원 수준으로 폭락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자식처럼 키워온 방울토마토를 모두 뽑아 버리기도 한 그는 헤어날 수 없는 부채의 수렁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지난해 다시 한번 방울토마토 농사에 도전했다. 그러나 2,000만원의 적자만 기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빚 보증을 선 주위 농민이 파산, 농협부채 1억원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40℃가 넘는 비닐하우스 속에서 연 300일 이상을 일하다 보니 건강도 나빠졌다.
그는 “곧 중학교에 진학하는 아들과 예능에 소질이 있는 딸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농촌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이다.
“열악한 농촌환경에 적응하느라 고생만 한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그는 “도시에서 공사장을 전전해도 생활비는 벌 수 있을 것”이라며 한숨을 지었다.
부여=이준호기자
junho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