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모후가 30일 서거함으로써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이끄는 윈저 왕가와 군주제가 쇠락의 위기에 놓였다.국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사랑과 지지를 받은 여왕 모후가 사치와 각종 스캔들로 얼룩진 왕실의 보호막이자 국민과 왕실의 마지막 연결 고리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 동안 영국에서는 군주제를 포기하고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공화제를 채택하자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최근 4차례에 걸친 왕손들의 이혼과 사치스러운 생활 행태 등이 언론의 도마에 오르내리면서 영국 왕실은 ‘아무런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세금만 축내는 존재’로 비판받기도 했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들은 영국 왕실의 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론조사기관인 MORI가 2월 발표한 바에 따르면 영국 청년층의 절반이 왕실보다 TV 만화 시리즈인 ‘심슨 가족’에 더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에는 성인 1,000여명 중 55%가 왕실의 사치에 대해 우려를 표했고 70%는 왕실이 ‘구제 불능’이라고 응답했다.
‘마음의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 가시고 나면 영국 왕실과 군주제에 대한 회의적, 냉소적인 시각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영국 귀족 편람인 ‘버크스 피어리지’의 해롤드 브룩스 베이커 편집인은 “왕실은 어머니와 할머니를 잃은 슬픔보다 군주제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군주제의 포기를 속단하기에는 이르다는 견해도 있다. 즉위 50년을 맞은 엘리자베스 2세의 군주제 유지에 대한 의지가 굳건하고 2년 전 세습 의원들을 상원에서 축출했던 토니 블레어 총리 및 정치인들도 여왕과 군주제에 대해 강력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MORI의 같은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0%가 영국의 미래를 위해 군주제와 여왕을 지지한다고 답했었다.
전문가들은 스캔들 메이커로 왕실의 권위 추락에 큰 책임이 있는 찰스 왕세자가 전통과 자존심의 상징으로서 얼마나 지지를 회복하느냐에 영국 왕실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보고 있다. 베이커 편집인은 “우리는 그가 차기 군주로서 적절한 인물인가를 일단 지켜본 뒤 군주제에 대한 지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문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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