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 소설집 '벽으로…'프랑스 작가 마르셀 에메(1902~1967)의 소설집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문학동네 발행)가 출간됐다.
그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칠십 리 장화’와 ‘천국에 간 집달리’ 등 단편 5편이 묶였다.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프랑스 소설에 익숙한 독자에게 마르셀 에메의 작품은 의아하게 느껴질 법하다.
평범한 등기청 직원이 벽을 통과하는 능력을 얻은 뒤 괴도로 변신한다거나(‘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비생산적인 소비자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법령이 발효되자 생존 시간이 적힌 카드가 암거래된다는(‘생존 시간 카드’) 얘기는 프랑스 소설의 주류에서 벗어난, 발랄하고 환상적인 내용이다.
빠르고 유쾌하게 읽히면서도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재미가 있다.
실제로 에메는 프랑스 문단에 만연한 어둡고 탁한 글쓰기 대신 활달한 상상력과 재치있는 문체를 선보여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작가다.
에메의 짧은 이야기들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면서 전개된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는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을 나누고 벽을 나오려다가 그만 벽 속에 응고돼 버린다.
‘천국에 간 집달리’는 ‘자기가 집달리이면서도 집주인을 타도하자고 외친’ 딱 한 가지 선행을 인정받아 천국에 들어간다.
작가는 독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기발한 반전을 즐긴다.
이렇듯 신랄한 익살을 펼치는 한편으로 작가는 따뜻하게 가슴을 덥히는 이야기를 풀기도 한다.
아버지가 대신 해준 숙제로 형편없는 점수를 받고도 아들은 아버지의 자리를 지켜주려고 “제일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거짓말한다.
(‘속담’) 비싼 장화를 갖고 싶지만 가난을 운명의 자비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아이에게 가게 주인은 턱없이 싼 가격에 장화를 넘겨준다.
그것은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장화였다.
장화를 신고 날아오른 아이는 아침 햇살을 한 다발 따와서 어머니 곁에 놓는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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