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4년 3월30일 프랑스의 시인 폴 베를렌이 메스에서 태어났다. 1896년 몰(歿).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이 시인의 생애는 순탄치 않았다. 그는 파리 시청 직원으로서 맞닥뜨린 파리 코뮌을 지지했다가 봉기 진압 뒤 일을 그만 두어야 했고, 연인처럼 가까웠던 랭보에게 총상을 입히고 옥살이를 했다.만년에 시골 사립 중학교 교사가 됐지만 제자와 동성애에 빠져 면직 당했다. 그는 일생을 추문과 주정과 가난 속에서 보냈고, 그가 52세로 죽었을 때 그를 임종한 것은 동거하던 창녀였다.
그러나 베를렌은 19세기의 가장 뛰어난 문학 정신 가운데 하나였다. ‘토성인의 노래’ ‘화려한 향연’ ‘좋은 노래’ ‘말 없는 연가’ ‘예지’ 등의 시집과 평론집 ‘저주받은 시인들’은 그의 궁핍한 실존이 섬세하고 깊다란 감각으로 채워져 있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베를렌을 통해서 프랑스 상징주의 시는 하나의 음악이 되었다. 번역된 시로는 제 맛을 보기가 어렵지만, ‘가을의 노래’나 ‘거리에 비 내리듯…’ 같은 작품이 그런 음악으로서의 시다. “가을날/ 바이올린의/ 긴 흐느낌/ 단조로운/ 우수로/ 내 마음 할퀴네// 종소리 울리면/ 숨막히고/ 창백해/ 옛날을/ 추억하며/ 눈물짓네// 그리하여 나는 가네/ 모진 바람이/ 날 휘몰아치는 대로/ 이리 저리/ 마치/ 낙엽처럼.” “거리에 비 내리듯/ 내 마음에 눈물 내리네/ 가슴 속 깊이 스미는/ 이 슬픔은 뭘까?/ 속삭이는 빗소리는/ 대지 위에, 지붕 위에!/ 울적한 이 가슴에는/ 아, 비의 노래여!// 메스꺼운 내 맘 속에/ 까닭 없이 눈물 흐르네/ ?告?! 배반도 없었는데?/ 이 슬픔은 까닭이 없네/ 사랑도 미움도 없이/ 내 마음 왜 이리 아픈지/ 이유조차 모르는 것이/ 가장 괴로운 아픔이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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