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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 獨 라이프치히 도서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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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 獨 라이프치히 도서박람회

입력
2002.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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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독일출판계의 봄은 500년 전통의 라이프치히 도서박람회와 함께 왔다.21일부터 24일까지 옛동독인들이 책의 성지라 부르는 라이프치히의 거대한 박람회장엔 27개국에서 참가한 1,957개 출판사, 900명의 작가, 1,000여건의 행사, 8만명의 방문객들로 붐볐다.

올 박람회에선 세 사람의 이름이 기억된다.

소설가 귄터 그라스와 크리스타 볼프, 철학자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가 그들이다.

“모든 언어의 해석은 선입견에 의해 제약된다”는 이해이론으로 유명한 해석학의 거장 가다머는 박람회 한주일 전 102세로 사망했다.

하이데거의 제자였고 야스퍼스의 후임자였으며, 나치 치하에선 ‘갈색대양 속의 한 섬’으로 위대한 거절의 역할을 했던 이 독일철학 마지막 현자의 죽음은 독자들로 하여금 열정적으로 그의 대표작 ‘진리와 방법’을 찾게 했다.

소설 ‘메데아’(1996년) 이후 침묵을 지켰던 구동독 출신의 여류작가 볼프(72)가 192페이지짜리 새소설 ‘화신(化身)’을 발표하며 문단에 존재를 다시 알린 것도 이 봄이다.

그녀는 동독 멸망 직전 병원에 이송된 한 환자의 인식을 통해 “수십년간의 인큐베이터의 시간은 갔다. 지금 나는 중병이란 이름의 회복을 앓고 있다”며 과거 동독이 지닌 유토피아라는 이름의 유령에 전별편지를 보내고 있다.

독일통일 이후 볼프는 동독 정보부에 대한 협조전력풍문으로 혹독한 곤욕을 치르며 수 년간 침묵했었다.

그러나 ‘화신’으로 다시 독자 앞에 섰고 설상가상으로 박람회중 제1회 독일 저작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 봄 독일 최고의 출판화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귄터그라스의 신작 소설 ‘뒷걸음질’이다.

“독일현대사는 필연적으로 아우슈비츠와 함께 사유되어야 한다”고 선언하며 ‘가해자로서 독일민족’을 사정없이 검시(檢屍)했던 74세의 이 탁월한 소설가는 이 봄 그의 단치히 3부작 ‘양철북’ ‘고양이와 쥐’ ‘개들의 세월’에 이은 또 하나의 중요한 단치히 비가(悲歌) ‘뒷걸음질’을 통해 돌연 57년전 겨울 바다에서 독일인이 경청하고 싶지않은 참혹한 악몽 한자락을 인양해 낸다.

독일의 타이타닉이라 불리는 피난선 빌헬름 구스트로프의 비극이 그것이다.

1945년 1월30일 소련군의 추격을 피해 서쪽으로 항해하던 이 거대한 독일피난민선은 소련잠수함 S-13의 어뢰공격을 받고 침몰, 독일인 9,000명이 겨울바다에 수장된다.

문제는 이중 4,000명이 여자와 아이들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라스는 이 소설을 통해 그동안 독일문단의 금기였던 ‘피해자로서의 독일국민’의 봉인된 애통을 제시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21세기 독일의 위상이다.

독일통일, 아프가니스탄 지상군 파견으로 독일은 전범국가로서의 정신적 금치산 선고로부터 해독(解毒), 복권(復權)되고 있다.

이 책이 출판 즉시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현상은 그래서 주목할만하다.

뤼벡에 있는 그라스의 집으로 전화하자 그의 개인비서 오솔링여사는 그가 5월 한국과 북한을 동시에 방문할 것이라고 전한다.

강유일ㆍ소설가ㆍ라이프치히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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