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대장, 로봇 캉타우, 태권소녀 아라치, 각시탈, 독고탁….1970년대 허름한 만화방이나 ‘어깨동무’ ‘소년중앙’ 같은 어린이 잡지에서, 아니면 동네극장에서 종횡무진하던 만화 주인공들이다.
이들이 월간 만화잡지 ‘웁스’(학산문화사 발행) 3월호에 첫 회가 연재된 ‘철인 캉타우 리턴’에서 모두 부활했다.
20여년을 어디서 살다가 왔는지 나이도 먹었고 얼굴도 변했다.
스토리작가 유경원(33)씨와 ‘웁스’ 편집장 박성식(33)씨가 의기투합해 옛 만화 주인공 20여 명을 되살려냈다.
원작은 원로 만화가 이정문(61)씨의 1976년 작 ‘철인 캉타우’. 그림은 조민철(28)씨, 로봇 디자인은 주영삼(35)씨가 맡았다.
‘오크타’라는 행성을 식민지로 만든 2010년의 지구가 배경.
오크타니언 해방동맹이 지구 곳곳에서 게릴라 전을 벌이자 지구평화유지군은 이들을 제압하기 위해 2만년 전 봉인된 로봇 캉타우를 부활시키려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두 사람이 외계인인 카우카와 지구인인 강시라.
원작에서도 남극 얼음 속에 갇혀있던 철인 캉타우를 깨우는 것도 카우카였다. 결국 원작의 내용을 리메이크한 셈이다.
향수 속 만화 주인공들은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
먼저 철인 캉타우. 로봇이라면 일본의 마징가Z나 아톰밖에 없는 줄 알았던 1970년대에 보무도 당당하게 나타난 국산 로봇이다.
온 몸에 표창이 박혀있던 외모와 벌집모양의 가슴 디자인으로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주인공이다.
‘철인 캉타우 리턴’에서는 아직 표창이 몇 개밖에 없지만 앞으로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통해 예전 모습을 되찾을 예정이다.
커다란 오른손 주먹을 붕붕 휘두르던 고운 미소년 주먹대장(김원빈 원작ㆍ1975년)도 컴백했다.
그러나 그도 나이를 먹어 어엿한 30대가 됐다. 해맑던 눈이 세파에 약간 찌들어 있다.
오른 손목에 특수팔찌가 씌워진 것만 빼고는 가공할 힘이나 한복을 입은 모습은 여전하다. 직함은 지구평화유지군 극동지부 특무대장.
멋진 2단 옆차기를 선보였던 아라치는 또 어떻게 됐을까.
1977년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선보인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의 여주인공 아라치는 지구평화유지군 극동지부장이 됐다.
역시 30대 초반 여성으로 변모해 눈가에 약간의 주름은 잡혔지만 태권도복을 입은 모습이 아름답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이밖에 사고뭉치였던 로봇 찌빠(신문수 원작)는 주먹대장을 좇아 다니는 첨단 로봇으로, 일본 경찰을 시원하게 때려눕혔던 각시탈(허영만 원작)은 주먹대장의 라이벌로 변신했다.
총명한 사이보그 007(김 삼 원작)은 이중성격의 비밀요원으로, 귀여운 꼬마 독고 탁(이상무 원작)은 약간의 건달기 있는 청년으로 바뀌었다.
앞으로 최소 1년 이상 연재하면서 또 다른 만화 주인공들도 주연ㆍ조연ㆍ카메오(단역)로 출연시킬 계획이다.
첫 회가 연재되자마자 출판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400여 통의 격려성 글이 올라왔다.
스토리작가 유경원씨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386세대는 향수를, 20대는 새로움을 느꼈던 겁니다. 지난해 여름 ‘철인 캉타우 리턴’을 기획하면서 가장 염두에 뒀던 것이 바로 ‘복고’와 ‘새로운 이야기’입니다. 일본만화가 판을 치는 요즘, 국산만화의 화려했던 1970년대를 재건하자는 임무를 띠고 캉타우와 주먹대장이 되살아 난 것이죠.”
만화ㆍ애니메이션 평론가 송락현(시공사 만화사업부 기획팀장)씨는 최근의 ‘복고 열풍’의 시각에서 이 작품을 평가했다.
“‘197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386세대는 요즘 10ㆍ20대 위주의 문화에서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공허함을 파고 든 셈이죠. 최근 ‘꺼벙이’나 ‘로봇 태권V’같은 70년대 만화가 줄줄이 복간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다만 ‘철인 캉타우 리턴’은 복고는 하되 새로운 이야기와 주인공을 갖고 태어난 것이 주목할 만 합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부활의 주역 박성식ㆍ유경원시
“최근 20여년 동안 로봇 만화가 없었다는 점에 주목했어요. 로봇만화를 보고 자란 386세대에게 충분히 호소력이 있다고 확신했습니다.”(박성식)
“이왕 ‘철인 캉타우’를 복원하는 김에 다른 만화 주인공도 살려보기로 했습니다. 그 순간 너무나 많은 주인공들이 떠오르더군요.”(유경원)
‘철인 캉타우 리턴’을 탄생시킨 스토리작가 유경원(33)씨와 ‘웁스’ 편집장 박성식(33)씨는 이 작품을 “위대한 선배 만화가들에 바치는 헌정작”이라고 정의했다.
1970년대 자신들을 들뜨게 했던 만화 주인공을 한시도 잊을 수 없었다고 했다. “10대였던 아라치가 어엿한 30대 초반으로 변모한 그림을 보자 목에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어요.”(유경원)
이들이 옛 만화 주인공을 부활시키기로 마음 먹은 것은 지난해 여름.
섹스와 폭력 일색인 성인만화 시장에 386세대의 구매욕구를 자극할 다른 소재를 찾다가 어렸을 적 보았던 ‘철인 캉타우’를 떠올렸던 것.
“이거다 싶었죠.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허황되고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사라진 로봇물을 그리워하는 독자층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박성식)
원작자인 이정문(61)씨도 흔쾌히 승낙했다. “한국만화를 한번 멋있게 살려봐라”라고까지 했다.
그리고는 그림 작업을 지난해 ‘소년 챔프’ 만화 공모 당선자로 대구에서 활동하는 조민철(28)씨에게 맡겼다.
박씨는 “첫 회가 나간 후 네티즌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며 “원작에서 주인공이 등장할 때 쓰였던 효과음 ‘찬-’이나, 레이저 광선의 효과음 ‘츠팟’까지 그대로 복원해달라는 주문까지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유씨는 “앞으로 또 어떤 주인공이 등장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원작에 충실하면서 요즘 신세대도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로 작품의 완성도와 재미를 높이겠다”고 말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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