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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미국따라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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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미국따라잡기

입력
2002.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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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나 친한 사람끼리는 닮는다는 말이 있다.얼굴이나 행동이 친남매처럼 닮은 부부들은 금슬이 좋겠다는 덕담을 흔히 듣는다.

심리학에서는 친근한 사람끼리의 자세나 행동일치를 맞장구(Interlocutional Synchronism)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상대의 행위나 말투 등을 따라 하면 그 사람에게 호감을 줄 수 있다는 믿음에서 닮은 꼴 현상이 나온다는 것이다.

대화 중 상대방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것도 호감을 사기 위한 무의식적인 행동이라는 해석이다.

■ 뉴욕이나 파리의 패션이 삽시간에 국내에서 유행하는 것은 선진국 문화에 호감을 가진 대중들의 맞장구 때문일 것이다.

기업들이 선진국의 구조조정사례나 경영기법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기업가치를 올리기 위한 따라 하기의 일종이니 탓할 바 못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미국 따라 하기는 단순한 호감의 정도를 넘어서 중증이 된 지 오래다.

국내 회계법인들이 미국 유수의 에너지 회사 엔론의 파산을 초래한 부실감사까지 따라 했다는 것도 그래서 놀랄 일이 아니다.

■ 얼마 전 국내 13개 대기업이 분식회계 혐의로 금융당국의 중징계를 받은 뒤 재계가 대책마련에 부산하다.

기업 회계장부를 감사하는 회계법인들도 발칵 뒤집혔다.

감사보고서를 놓고 뒤늦게 회계법인과 기업간의 줄다리기가 곳곳에서 벌어지는 등 분식회계 소동 이후 ‘회계대란’이 점입가경이다.

23조원의 분식회계로 침몰을 자초했던 대우사태에서도 별다른 교훈을 얻지 못하고 미국 따라 하기에 골몰했던 기업과 회계법인들의 자업자득인 셈이다.

■ 미 상원이 최근 액수와 용도의 규제를 받지 않는 정당용 정치헌금(소프트머니)을 전면 금지하는 정치자금법을 전격 통과시켜 화제가 됐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미국 정치사상 가장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킬 이 법안 통과의 일등공신은 엔론사태였다.

절반 이상의 상ㆍ하원의원이 엔론사의 소프트머니를 받은 것으로 드러나자 7년 여를 끌며 이 법안 통과를 저지시켜 온 의원들이 반대할 명분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미국 따라잡기를 고집스레 외면해 왔던 우리나라 정치권이 미국 따라 하기에 나서야 할 때가 된 것 아닐까.

이창민논설위원

cm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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