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살려면 최저생계비는 포기해야 한다니, 그러면 어떻게 먹고 살란 말입니까.”최소한의 생존조건과 애끓는 모성 사이에서 애태우다 끝내 자살을 택한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최옥란(崔玉蘭·37)는 마지막 가는 길조차 여의치 않았다.
28일 아침 최씨 운구차량은 명동성당으로 가려다 서울 시청 부근 도로 한복판에서 경찰에 둘러싸였다.
운구행렬에 동참한 장애인들은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은 채 경찰의 완강한 제지에 이리저리 떠밀렸다.
출근길이 다급한 시민들은 뜻밖의 도심 체증에 짜증을 내며 장례행렬에 잔뜩 못마땅한 눈길을 보냈다.
최씨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선 등 최저생활 계층의 좀 더 나은 복지를 위해 온몸으로 싸워 장애인 운동가.
거동마저 힘겨운 몸으로 지난해 겨울 칼바람 속에서 거리 천막농성을 벌이고 정부기관을 끈질기게 찾아다녔다.
그러나 그는 이혼한 남편으로부터 아들(9)을 되찾으려 주변의 도움으로 마련한 700만원 때문에 그나마 연명을 가능케 해온 30여만원의 생계지원비마저 끊기게 되자 더 이상 버틸 힘을 잃었다.
경찰과 운구행렬이 대치하던 그 시간, 국제적 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우리나라의 국가 신용등급을 A등급으로 상향 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모두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4년4개월만의 쾌거”를 제 일처럼 반겼다. 장미빛 경제전망 속에서 주가는 이날도 900선을 오르내렸다.
하지만 최씨의 죽음은 화려한 성장의 뒤켠으로 그늘은 더 짙어져가고 있음을 새삼 상기시켜 주었다.
최씨처럼 빈곤과 장애, 질병으로 인해 최소한의 인간적 삶조차 영위하지 못하는 이들이 정부 집계로도 15만명이다.
최씨가 남긴 유언은 간단했다. “후배(장애인)들만 잘 살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고찬유 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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