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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난타 / 여인천하 직장의 청일점이 말하는 女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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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난타 / 여인천하 직장의 청일점이 말하는 女子

입력
2002.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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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제리나 피임약 같은 여성용품을 판매하는 ‘여인천하’ 회사에서 일하는 소위 ‘청일점’ 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생존’ 을 위해 여성을 이해하기 시작했던 이들은 여성들과 4~5년 넘게 부대끼며 일하면서 여성성의 미덕을 누구보다도 앞장서 칭찬하는 페미니스트로 변했다.

“기이 여성화하고 싶다”는 이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 직장에 처음 들어갔을 때 - "술 안마셔도 그렇게 잘 놀다니"

(‘너 그러다 여자처럼 될라’ 여자들의 조직에 들어갔을 때 주변에서 많은 걱정을 들었던 참석자들. 처음에 고달프고 괴로운 점도 많았지만 이젠 익숙해졌다.)

_남과 다른 일을 하고파 속옷회사에 들어갔지만 소개팅 나가 회사 이름을 대면 다들 ‘푸하하’ 웃고, 친구들도 처음엔 놀렸다.

_나도 처음엔 그랬지만, 피임 교육이라고는 제대로 받아본 적 없는 남자들이라 이런저런 얘길 해주면 다들 좋아한다.

_우리 부모님은 아직도 내가 무슨 회사 다니는지 모르신다. 남자들은 ‘이름값’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웬만한 소신이 없이는 홍보 일을 하기 힘들 것 같다.

_과장님 부장님이 다 아줌마다. 온통 아이, 시집, 드라마 얘기라 적응이 되지 않았다. 지금은 같이 수다 떨며 내 가족 얘기도 편하게 한다.

요즘 수다의 주제는 걸음걸이로 아들인지 딸인지 알아맞힌다는 ‘아들딸 계산법’이다.

_남자들하고 밥 먹으면 한 마디도 안하고 밥만 먹는데 여자들은 내가 한 마디도 안 해도 자기들끼리 뭐라고들 잘 떠든다. 듣고 있으면 재밌다.

_술은 조금씩 마시고 다들 노래방이나 춤추러 들 가는데 정말 신기하다. 어떻게 맨 정신에 그렇게 잘 들 놀 수 있는지.

# 남과 여, 이렇게 다르다 - '무거운 짐은 남자몫' 땐 미워

(대인관계에서 충돌이 생기면 남자와는 달리 속수무책이다. 완벽주의를 추구하기 때문에 까다롭고 숨막힐 때도 있다.)

_남자라면 술 한잔으로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여자들에게는 안 통한다. 술 한잔에 걸쭉하고 지저분한 얘기가 오가다 보면 금방 형동생 하지 않나.

_여자상사와의 마찰로 전 직장을 그만둔 적이 있다. 놀랄 정도로 꼼꼼해 빼먹는 걸 못 참는다. 여자 상사는 어렵지만 여자 직원은 좋다. 그만큼 섬세하게 잘 챙겨주니까(웃음)

_맞다. 여자 상사들이 내 잘못을 어찌나 잘 기억하고 있는지 소름이 끼칠 정도다. 일시와 상황, 장소까지 줄줄이 대며 야단치면 그야말로 바보가 되는 기분이다.

(‘커피 타는 일은 여자 몫’이라는 생각이 여자들을 화나게 하듯, ‘무거운 짐은 남자 몫’ 이라고 미뤄놓는 여성들의 태도가 그들을 화나게 했다.)

_부하직원이 모두 여직원이어서 무거운 짐은 모두 내가 든다. 육체적으로 힘든 건 문제가 아니다. “당연히 남자가 할 일”이라며 미뤄놓고 딴청부리는 게 얄밉다.

_나도 밑에 여직원이 스무 명 정도 있지만 원단이나 종이 나르는 일은 내 몫이다. 말이라도 “고생하시네요. 도와드릴 건 없을까요” 하면 얼마나 좋은가.

뭐라도 시키면 놀라 째려보는 여자들을 보면 기가 막힌다.

_여자를 이해하려는 움직임은 많이 확산된 것 같은데 남자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여자들에게 편리했던 기존의 관습은 계속 유지되면서 여성 권한은 계속 확대하니…. 남자들에게는 이중고가 아닐까.

(‘남녀평등’구호는 여전히 유효하다. 여전히 세상은 남성중심적이기 때문에.)

_그래도 아직까지는 남자가 더 편하다. 우리는 안에서는 여자에 포위(?)돼 있다지만 한 발짝만 나가면 온통 남자 아닌가.

_솔직히 그렇다. 날 두고 “피임약도 안 써본 남자가 어떻게 마케팅을 하겠는가”라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산부인과 의사가 대부분 남자 아닌가. 내가 일하는 게 더 쉽다. 우리가 여자사회에 적응하는 것보다 ‘홍일점’이 남성위주의 조직에 적응하는 게 더 어려울 것이다.

# 여자, 알고 보니 - "업무적응 뛰어나고 말귀 밝아"

(이들은 ‘생존을 위해’ 여성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 결과 ‘여성성’이 지니고 있는 엄청난 경쟁력을 발견했다.)

_‘말을 듣지 않는 남자와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라는 책을 봤다. 이해 못하던 여성적 특성들이 이젠 자연스럽게 강점으로 받아들여진다.

_브레인스토밍을 할 때 남자들은 영화 얘기를 하면 출연 배우, 과거 출연작 등으로 한 가지 주제를 끈질기게 파고 드는데 여자들은 쇼핑얘기에서 드라마로, 그러다 갑자기 남편 흉을 보고 하는 식이다.

이전에는 “정신없다, 조용히들 해”라며 질색했었지만 지금은 그 다양한 가지치기에서 영감을 얻을 때가 많다.

_지식전환이 빠른 것 같다. 생각나는 모든 것을 동시에 끄집어내는 능력이다. 그래서 여자들이 멀티태스킹에 능하다.

_남자보다 업무 적응력이 뛰어나다. 남자 직원들은 여자에 비해 굼뜨고 말귀도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업무 태도도 너무나 열정적이다. ‘대충 다니다 시집이나 가겠지’ 하는 것은 참 우스운 편견이다)

_여자들이 훨씬 더 독하다. 남자는 안될 것 같으면 기대수준을 낮추거나 적당히 타협하는 데 여자는 끝까지 밀고 나간다.

안되면 편법으로 돌려치기하는 남자들의 불투명성이 그간 ‘융통성’으로 미화해 온 게 아닐까.

_남자 많은 직장의 사람들이 여자 얘기 함부로 하는 걸 들으면 이젠 야만인처럼 느껴진다. “왜 여자의 그 많은 장점을 모르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 여성화는 ‘진화’다 - "같이 있다보니 나도 상냥해져"

(“너 그러다 여자처럼 될라”여성들의 조직에 들어갔을 때 주변에서 이런 걱정들을 들었다. 그러나 이들은 “여성화야말로 바람직한 ‘진화’의 방향”이라고 말한다. )

_내 자신이 터프한 줄 알았는데 요즘은 나의 여성적인 측면을 발견하고 참 많이 놀란다. 이젠 남자들 많은 데는 가기 꺼려진다. 혹시 직장을 옮기더라도 남성문화가 농후한 곳은 싫다.

_대학 동기를 만나도 여자만 만난다. 화제가 다양하고 풍부하니까. 여자들은 회사를 떠나서도 관계가 유지된다. 누가 애를 낳는지 누기 어디로 이사갔는지….

_완벽한 업무처리, 이건 정말 기꺼이 ‘여성화’ 되고 싶은 이유 중 하나다. 남자들보다 업무처리가 확실하고 꼼꼼하다. 어딜 가더라도 이런 장점을 전파해야겠다.

_난 엄청나게 덜렁대는 편이라 상사한테 늘상 혼난다. 하지만 자재나 생산관리 쪽의 남자 사원 만나 이것저것 물어보면 “저런 바보같이….” 소리가 절로 나온다.

왜 그렇게 들 꼼꼼하지 못한지. 그만큼 여성들 속에서 내 자신도 엄청나게 발전한 거다. (웃음)

_사근사근하고 상냥한 태도도 큰 자산이다. 나도 여자들과 일하며 전화목소리가 달라졌다. 처음 듣는 사람들은 “좋은 일 있으세요?” 라고 묻는다.

_여직원에게는 말 한마디 잘못하면 바로 마음의 상처가 되니까 말할 때마다 거듭 생각하는 버릇이 들었다. 까다로운 손님을 상대할 때 상당한 미덕이 된다.

_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깊어졌다. 남자들끼리 있을 때는 어디 그런 게 필요했겠는가. 이제는 사람 품성을 꼼꼼히 파악해 그 사람에 맞는 대인관계를 구사한다.

어떤 조직에서든 자신감이 생길 것 같다.

●참석자

변정원(30) ㈜비비안 디자인실 5년차 디자이너. 60여명의 디자이너 중 유일한 남자.

소병권(34) ㈜한국쉐링 마케팅부 계장. 피임약을 판매하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마케팅부 직원 6명 가운데 유일한 남자.

김종오(33) 홍보대행사 메리트ㆍ버슨 마스텔러 차장. 20여명의 직원 중 유일한 남자.

신동국(32) 여성의류업체 ‘신원’ 고객만족팀(소비자상담실) 근무. 본인과 팀장과 제외한 팀원 13명 모두 여자.

양은경기자

key@hk.co.kr

■여성화는 곧 진화?

토론 참여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여성화는 진화의 방향”이라고 말했다. 이는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당연한 자각으로 평가된다.

여성학자 박혜란씨는 “지위나 역할로 상대방을 조종하려 하는 남성적 패러다임 대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존중하는 여성성이 모두에게 각광받는 때가 되었다. 경쟁과 제압보다는 공존을 선호하고, 결국 그것이 더 높은 효율성을 낸다는 사실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성성이 무조건 우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정신과전문의 정혜신씨는 “전통적인 남성성이 한계에 부딪치면서 여성성이 보완된 양성조화가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 스톨러는 남성성의 한계와 불안정성을 이렇게 분석한다.

아이들은 자신을 돌봐주는 여성(어머니)을 통해 부드럽고 감성적인 ‘여성성’이 내면화된다.

그러나 남성은 어느 시기에 이르면 그것을 통째로 부정하라는 압력을 받는다.

사회에서 “그래야 남자로 대접하겠다”고 말한다. 여성성이 억지로 제거된 심성은 불안하고, 황폐하다.

양성이 고른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은 70년대 심리학계에서부터 꾸준히 대두되어 온 이론.

박혜란씨는 “ ‘남성성’과 ‘위대한 인간’을 동일시하는 것은 착각이다. 아인슈타인만 해도 흔히 남성적 사고능력으로 치부되는 논리적 분석력에 바이올린을 즐기는 여성적 감성이 결합됐기 때문에 불세출의 업적을 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여성성의 확대를 ‘남성성의 상실’ 혹은 ‘생태계의 위기’ 로까지 해석하며 “초등학교에 남자교사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각의 의견은 ‘어불성설’로 일축된다.

아버지가 아이를 낳고 키우지 않는 한 ‘여성화’는 너무도 자연스런 방향이다.

또한 관계지향적인 특성을 부정적으로 보면 ‘의존적’이고, 완벽하고 꼼꼼한 성향도 ‘속좁음’으로 폄하될 수 있다.

여성화를 어떻게 보느냐가 여성화 그 자체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여성학자들은 말한다.

양은경기자

k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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