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정진석교수 논문발표…일제시대 '신앙생활'誌 재평가돼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정진석교수 논문발표…일제시대 '신앙생활'誌 재평가돼야

입력
2002.03.29 00:00
0 0

일제시대 개인이 발행한 잡지로는 가장 오랫동안 발간됐던 남은(南隱) 김인서(金麟瑞) 목사의 ‘신앙생활’이 잡지사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크다는 주장이 나왔다.정진석(鄭晉錫)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28일 연세대 루스채플에서 열린 제9회 김인서 목사 기념강좌에서 ‘김인서의 신앙생활을 통한 선교활동’이란 논문을 발표하고 이같이 밝혔다.

‘신앙생활’은 1932년 평양에서 창간돼 10여년 동안 복음전도와 교회개혁에 앞장섰던 개신교계의 대표적 월간지.

비슷한 시기에 교단에서 발행한 ‘신학지남’(1918~1940), ‘신학세계’(1916~1940), ‘활천’(1922~1941), 무교회주의자 김교신(金敎信)이 주축이 된 ‘성서조선(1927~1942)’이 있었으나‘신앙생활’은 김 목사 개인의 힘으로 발행된 점이 특이하다.

34쪽 분량의 소규모 잡지 ‘신앙생활’은 폐간 무렵에는 발행부수가 3,700부에 달해 서울에서 발행되던 일반 종합잡지 못지않은 명성을 얻었다.

정 교수는 “‘신앙생활’은 무엇보다 잡지발행이 불리했던 1930년대에 개인 잡지의 한계를 넘어서 10년 가까이 발행된 점이 특이하다”며 “51년 부산에서 복간돼 5년 가까이 지속될 때까지 개신교 신자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쉬운 한글 문장을 사용하고, 김 목사 자신이 문필가로서 한글의 아름다움을 잡지 속에 담아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신앙생활’의 잡지사적 위치에 대해서는 일제 말기 기성교회와 김교신으로 대표되는 무교회주의자의 사이에서 기성교회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비판하는 동시에 제도권 내에서 장로교의화합과 통일을 호소했던 중도적 잡지라고 평가했다.

1894년 함경남도 정평군 출생인 김인서 목사는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돼 4년 동안 옥고를 치른 뒤부터 ‘신앙생활’발행을 통한 신앙 운동을 펼쳐온 개신교계의 대표적 문필가다.

64년 타계한 그를 기리기 위해 94년부터 연세대 부설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주최로 매년 ‘김인서 기념강좌’가 열리고 있다.

/ 김영화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