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성을 면치 못하던 공연기획이 전문화ㆍ산업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공연기획사에 투자하는 회사가 생겼는가 하면 공연물 유통 전문회사가 등장했다.지난해 12월 설립된 엔터테인먼트 분야 투자사 ㈜ 바인홀딩스는 이달 들어 국내 대표적 클래식 공연기획사인 크레디아에 3억원을 출자(지분 37.5%)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영화, 뮤지컬, 음반 분야의 투자와 공연별 프로젝트 투자는 꾸준히 있었지만 클래식 전문 기획사에 대한 투자는 처음이다.
바인홀딩스의 유충민 대표이사는 “공연산업은 방송, 음반, 영화 등 여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기초”라며 지속적인 투자를 약속했다.
1월에 문을 연 플라랜스(대표 임소민)는 국내 최초의 공연 콘텐츠 유통 전문회사다. 이미 만들어진 공연 상품을 수요처의 주문에 맞춰 납품하는 업체다.
영화의 배급사 역할과 비슷하다. 우선 일반 기업체와 공연단체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만들기에 들어갔다.
그동안 은행의 고객 사은행사에 오페라 갈라ㆍ칸초네ㆍ발레를, 대형 영어학원이 외국인 강사들을 위해 마련한 신년행사에 전통예술 공연을 제공했다.
앞으로 공공기관의 각종 이벤트나 지역 축제, 지방 공연장에도 적당한 공연물을 소개할 계획이다.
플라랜스의 김정은 기획실장은 “기업 행사에 공연물이 들어가는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지만, 기업은 공연 상품 정보에 어둡고 예술단체는 공연물을 파는 방법을 몰라 연결이 잘 안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양자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인기 공연물을 기업 마케팅에 활용하는 적극적인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화장품 회사 태평양은 타악 퍼포먼스 ‘난타’의 제작사 PMC프로덕션에 1년간 3억원을 지원해 세계 시장을 겨냥한 공동 마케팅을 펴기로 27일 계약을 체결했다.
태평양의 새 브랜드 ‘아모레 퍼시픽’이 ‘난타’의 해외 공연을 지원하고, 월드컵 기간에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난타’ 관람과 서울 명동에 있는 태평양의 고객 서비스센터 무료 이용을 묶은 패키지 상품을 판매한다.
사실 클래식이나 연극, 무용 등 공연예술은 가요나 영화 같은 대중예술과 비교하면 시장 규모가 워낙 작아 그리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 못된다.
예컨대 국내 클래식 인구는 많아야 5만~10만 명으로 추산된다.
시장의 파이가 작다 보니 공연기획사도 구멍가게 수준에 그치거나 비교적 틀을 제대로 갖춘 기획사라 해도 섭외부터 홍보, 마케팅, 진행까지 도맡아 처리함으로써 업무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관객 100만 명의 대박 시대를 연 국내 영화산업이 기획ㆍ제자ㆍ투자의 전문화를 이루고 있는 것에 비하면 한참 뒤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사와 유통회사가 등장한 것은 당장의 수익보다는 장기적 가능성을 보는 것이고, 공연산업이 비록 더디지만 조금씩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작지만 의미있는 움직임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