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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생존권 투쟁 최옥란씨 숨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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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생존권 투쟁 최옥란씨 숨져

입력
2002.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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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여, 어찌 죽은 자의 마지막 길까지 막는가.’28일 오전 7시10분 서울 중구 서소문로. 전경들에 둘러 싸여 멈춰 선 1대의 운구차량에 모셔진 죽은 자의 영정이 산 자들의 다툼을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해 12월3일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요구하며 명동성당에서 6일간 천막 농성을 벌이다 숨진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최옥란(崔玉蘭ㆍ37ㆍ여)씨의 명동성당 노제는 경찰의 불허 방침으로 끝내 무산됐다.

서울 청계천 벼룩시장에서 좌판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오던 최씨. 2000년 초 목 디스크가 악화돼 걷기 조차 힘들어지면서 이 마저 접어야 했다.

최씨는 이후 국민기초생활보장제에 따라 정부로부터 생활비 보조를 받게 된다.

그러나 최씨에게 전달된 돈은 고작 월 30만5,000원. 최저생계비는 고사하고 약값도 댈 수 없어 매달 30여만원의 빚을 져야 했다.

결국 최씨는 지난해 12월부터 생존권 보장과 제도개혁을 요구하며 거리 농성에 나서고 정부청사 항의방문도 시도했지만 모두 공허한 메아리에 그쳤다.

최씨는 지난달 더 큰 시련을 맞는다. 전 남편의 방해로 2년 동안 만날 수 없었던 아들(9)의 양육권을 되찾기 위해 몸부림쳤다.

재산이 없는 생활보호대상자는 양육권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규정을 전해듣곤 주변의 도움으로 700만원까지 마련했다.

그러나 “재산이 있으면 생계비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동사무소의 통보에 절망하고 말았다. 최저생계비와 모성애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는 지난달 21일 희망 대신 독극물을 마셨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다른 장애인들만이라도 잘 살아야 하는데…”라는 말을 남긴 채 26일 새벽 4시 심장마비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평소 장애인 인권운동에 헌신적이었던 고인의 뜻을 기려 장애인 단체 등은 명동성당 노제를 추진했지만 시위 전력을 문제 삼은 경찰의 저지로 이 마저 무산됐다.

어머니 우한성(禹韓成ㆍ70)씨는 딸의 시신이 곧바로 벽제 화장장으로 향한다는 말에 “딸애의 마지막 흔적이 배인 곳(명동성당)을 꼭 한 번 가야 하는데…”라며 오열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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