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미의 맹주 멕시코는 남미의 브라질과 함께 한일월드컵 본선 진출에 가장 애를 먹었다. 북중미지역 1차예선을 조 2위로 힘겹게 통과했고 최종예선 초반에도 미국 코스타리카 온두라스에 패해 탈락의 위기가 감돌았다.그러나 지난 해 7월 하비에르 아기레(42) 감독이 부임한 이후 4승1무의 놀라운 성적을 거두며 조 2위를 차지해 통산 12번째의 본선 진출을 힘겹게 달성했다.
예선 16경기에 무려 50여명의 선수가 출전하고 예선기간 중 감독이 3번이나 바뀌는 진통끝에 얻은 결실이었다.
그러나 월드컵을 2차례나 개최한 경력을 자산으로 삼는 멕시코는 항상 본선무대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험난한 예선과는 달리 16년만에 8강 진출을 목표로 잡고 있는 자신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간판스타로 군림하던 공격수 루이스 에르난데스(34)가 노쇠한 기미를 보여 본선 출전이 어렵게 됐지만, 1998년 프랑스월드컵 한국전에서 개구리 점프를 선보여 유명해진 콰테목 블랑코(29ㆍ레알 바야돌리드)의 공격력과 A매치 세계최다 출전기록을 보유한 클라우디오 수아레스(34)가 이끄는 수비라인은 건재하다.
아기레 감독은 다음 달 4일 미국과의 평가전을 앞두고 간판 골키퍼 호르헤 캄포스(36)를 대표팀에 합류시키는 등 베테랑 멤버를 총동원하고 있다.
지난 해 11월 멕시코축구협회의 푸대접에 반발해 대표 은퇴를 선언했던 블랑코는 최근 복귀를 선언, 최고의 핵심선수가 될 전망이다.
98년 월드컵 한국전서 공을 다리사이에 끼고 수비수 2명의 틈새를 뛰어넘는 희귀한 플레이(이 기술은 지금 그의 이름을 따 ‘콰테미냐’라고 불린다)를 선보였던 그는 팀이 탈락 위기에 몰린 지난 해 최종예선 마지막 4경기서 5골을 뽑아내는 신들린 활약으로 본선진출의 일등공신이 됐다.
아기레 감독이 사령탑에 오른 뒤 멕시코의 중원사령관으로 발탁된 백전노장 알베르토 가르시아 아스페(35ㆍ푸에블라) 역시 팀의 성적을 책임질 키 플레이어. 주 공격루트인 중앙돌파를 지양하고 측면 볼배급을 활발히 수행해 멕시코의 플레이 스타일을 변화시킨 주역이다.
그러나 지난 해 11월 코스타리카와의 예선전서 퇴장당했던 오른쪽 미드필더 헤수스 아레야노가 본선 2경기에 출장하지 못하게 된 것이 아킬레스건이다.
아기레 감독은 그의 빈 자리에 아르헨티나 태생의 귀화선수 가브리엘 카바예로(30ㆍ파추카)를 기용할 뜻을 내비쳤다.
또한 블랑코의 투톱 파트너로 유력한 팔렌시아(에스파뇰)와 보르헤티(라구나)가 블랑코와 함께 뛴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도 멕시코의 큰 걱정거리이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아기레 감독
“G조에서는 분명 이변이 일어날 것이다.” 지난해 7월 사령탑에 올라 멕시코를 예선 탈락의 수렁에서 건져낸 하비에르 아기레(42) 감독은 본선 전망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16강 진출에는 강한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 미드필더로 출전, 팀을 8강으로 이끌었던 그는 “G조에서 맞붙을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에콰도르의 3팀 모두가 해볼만한 상대”라며 최소한 조 2위는 자신했다.
그 이유를 “이탈리아는 항상 조예선에서 부진했고 크로아티아와 에콰도르는 비슷한 전력”이라고 설명한다.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아기레는 프로감독 입문 3년만인 99년 소속팀 파추카를 우승으로 이끄는 등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했으며 멕시코 축구의 부흥을 이끌 적임자로 평가 받는다.
1월 골드컵서 4강 진출에 실패하는 등 올해는 아직 상승세를 타지 못하고 있지만 ‘일은 가능한 한 간단히 처리한다’는 지도철학대로 여유 있는 표정이다.
세대교체 실패가 예선전 고전의 원인이라고 판단한 그는 골드컵에 A매치 경험이 없는 신예들을 대거 출전시켜 가능성을 시험했다.
캄포스와 에르난데스 등 노장을 배제한 그는 “멕시코는 아직 정체불명의 팀”이라며 세대교체가 진행중임을 명확히 했다.
“현재 왼쪽 미드필더와 최전방에 포진할 투톱 선정이 가장 어려운 고민”이라고 밝힌 아기레는 “다음달 5일께나 최종엔트리를 확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승부차기 '최악의 팀'
월드컵 역사에서 승부차기의 최대 희생양은 이탈리아를 꼽지만 멕시코는 승부차기 최악의 팀이다. 2차례 승부차기(86, 94년대회)에서 키커 7명이 나서 득점은 단 2개였다.
3명은 아예 공을 차보지도 못했다. 월드컵서 승부차기로 승부를 가려야 했던 15개국중 킥성공률이 최하위(28.6%)에 머물고 있다.
지난 1월 한국과의 북중미 골드컵 8강전에서도 득점 없이 비긴 뒤 승부차기서 2_4로 패하자 멕시코 언론들은 일제히 ‘승부차기 공포는 국가적 망령’이라고 푸념했다.
한일월드컵 8강을 노리는 멕시코로선 전력 강화보다 승부차기 연습에 몰두해야 할 형편. 실제 멕시코는 평가전 때마다 ‘비길 경우 승부차기를 하자’는 이례적인 제안을 해 상대팀 감독을 당혹스럽게 했다.
아기레 감독은 “페널티킥에 공포감을 느끼는 일부 선수들에겐 평가전의 승부차기가 최고의 연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축구의 나라답게 승부차기의 악령을 떨쳐내기 위한 노력은 범국민적 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승부차기 공포 극복에 가장 발벗고 나선 이는 다름아닌 비센테 폭스 대통령.
지난달 중순 자국을 방문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수상을 한 유소년 축구경기에 초청한 폭스 대통령은 경기가 끝난 뒤 느닷없이 슈뢰더 수상에게 승부차기를 제안했다.
“멕시코는 페널티킥을 넣지 못하기로 유명하다”고 운을 뗀 폭스 대통령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카우보이 신발을 이용, 3골을 성공시켜 슈뢰더 수상에게 3-2로 승리했다.
멕시코로선 대이변(?)을 연출한 셈. 대부분의 멕시코 신문에는 ‘기념비적인 승부차기 승리’라는 제목의 뉴스가 첫 페이지를 장식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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