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고용 허가제가 정부와 재계의 ‘뜨거운 감자’로 다시 떠올랐다.국내 중소기업을 지탱하는 핵심인력으로 이미 자리 매김을 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의 불법체류와 중소기업 인력난 등을 해결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정부와, 비용 상승을 우려해 반대에 나선 재계가 또 다시 힘겨루기에 나선 것이다.
▼정부의 강행 방침
고용 허가제란 외국인 근로자의 합법적 취업을 보장, 국내 근로자처럼 노동관계법에 따라 임금과 복지 등에서 동등하게 대우 받도록 하는 제도로 1997년부터 정부와 시민단체, 중소기업 간에 시행여부를 놓고 뜨거운 찬반 논쟁이 계속돼 온 사안.
논쟁에 재점화를 하고 나선 것은 노동부.
최근 대통령에게 보고한 ‘2002년 업무추진 계획’에서 “2년까지 취업이 가능한 기존 산업연수생 제도와 병행해 고용허가제를 올 6월까지 법제화하겠다”고 못을 박고 나선 것.
이 제도가 도입되면 외국의 인력 송출기관이 국내 취업을 원하는 근로자의 명단과 보유기술을 노동부에 통보하고 노동부는 고용안정센터에 이 명단을 비치하고 정부 허가를 받은 국내 업체가 이 명단을 보고 외국인을 직접 고용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다만 외국인의 취업기간을 3년으로 제한하고 고용허가제를 통한 외국인 근로자수를 국내 경제활동인구의 1~1.5%(20만~30만명) 수준으로 억제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반발에 나선 재계
정부의 방침이 나오자 중소기업계를 중심으로 재계가 연일 기자회견 및 성명 발표 등을 통해 결사반대에 나섰다.
고용허가제가 도입될 경우 ▦상여금과 퇴직금 등 추가비용 노동자 1인당 월 29만8,000원의 비용이 증가하고 ▦노동 3권 허용으로 외국인 근로자들의 단체행동 우려되며 ▦국내 근로자들의 실업 증가 등 경영 애로요인이 발생할 것이 반대의 이유다.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 김영수(金榮洙) 회장은 “고용허가제는 한국을 외국인 노동자의 낙원으로 만들어 외국인 불법 노동자의 무분별한 한국행만을 부추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5단체의 부회장단도 최근 고용허가제 반대 입장과 함께 ‘외국인 노동자 활용 준칙’을 만들어 “외국인 노동자에게 생길 수 있는 인권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겠다”며 정부 방침에 ‘딴지’를 걸었다.
▼외국인 근로자 실태 및 시민단체 입장
국내 불법체류 외국인은 1998년 12월 9만9,000여명에서 3년 사이 2.5배가 늘어 지난해말 25만여명에 이른다.
국내 체류 외국인 가운데 32만9,000여명 가운데 무려 77%가 불법체류자인 셈이다.
합법적인 산업연수생은 2000년 말 6만여명에 육박했으나 낮은 임금 등으로 불법체류자가 되면서 지난해말 기준으로 3만3,000여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이렇다 보니 한국이 불법체류 외국인들의 복마전이 되고 불법체류자의 약점을 악용한 고용주들의 폭행, 임금체불 등 인권유린이 자행돼 국제 인권단체의 단골 시비 거리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시민 단체 등은 이들의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와 평등노동조합 등은 “고용허가제 또한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제약한다”며 추가로 ▦기존 불법체류자의 합법적 신분 부여 ▦사업장의 자유로운 선택 보장 ▦계약 해지시 출국 시한 연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ㆍ경인지역 평등노동조합 이윤주(李胤周) 이주노동자 지부장은 “UN과 국제노동기구(ILO)가 정하는 기준에 따라 외국인 근로자의 권리를 인정해야만 인권 후진국의 오명을 벗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김태훈기자
oneway@hk.co.kr
■외국사례
정부가 추진중인 고용허가제와 비슷한 외국인력 운영제도는 미국ㆍ프랑스 등 선진국은 물론 우리와 경제사정이 비슷한 대만ㆍ싱가포르 등이 이미 시행하고 있을 만큼 세계적 추세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이민귀화법을 통해 외국인 고용 관계를 규정하고 있다. 외국인근로자 고용을 희망하는 사업주가 노동부에 고용허가를 신청한 뒤 허가서를 받아 이민귀화국에 제출하면 외국인을 채용할 수 있도록 한 것.
전체 근로자의 7.7%인 228만 명이 외국인력인 독일은 2년(1년 연장 가능)의 일반 노동허가와 5년 단위의 특별노동허가로 외국인 근로자들의 취업을 허가한다.
하지만 특별노동허가의 경우 과거 8년간 합법적으로 독일에 체류한 경우 취업을 허가하는 제도로 실업률 증가의 원인으로 부각되면서 사회문제화 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의 천국으로 통하는 프랑스에서는 외국인이 취업을 원할 경우 1년 단위로 노동허가를 받으면 되고 갱신도 가능하다. 3년 이상 프랑스에 체류하게 되면 ‘체류허가’를 받아 자유로운 취업이 가능하다.
일본은 우리와 가장 비슷한 제도를 시행 중인데 1990년 노무직 수요증가에 따른 불법체류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연수제를 도입했다.
93년부터는 제도를 보완, 기능실습제(1년 연수+2년 취업)를 운영중이다.
대만은 전체 근로자의 3.4%인 32만6,000명이 외국인 근로자로 우리와 비슷한 규모지만 불법취업자는 2만4,000명에 불과하다.
한때 불법취업자 문제로 골치를 썩었지만 92년 외국인 고용허가 및 관리법을 제정하면서 불법 취업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사업주가 3일간 일간지에 구인 광고를 낸 뒤에도 국내 근로자를 구하지 못할 경우 행정원 노공위원회로부터 외국인 고용허가를 받을 수 있다.
외국인 근로자에게는 노동관계법령이 적용돼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는 있지만 외국인 근로자만의 노조 결성은 불가능하다.
전체 근로자의 20%(31만명)가 외국인 인력인 싱가포르는 90년 ‘외국인 근로자고용법’을 제정, 전문직을 대상으로 고용허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비숙련 인력의 유입을 규제하고 있으나 좋은 조건 때문에 외국인들이 몰려들어 불법체류자가 상존하고 있다.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불법체류 존스씨의 가구공장 생활
“구걸할 수 있는 힘만 남아 있어도 한국에 사는 게 소원입니다.”
필리핀인 존스(가명ㆍ29)씨는 오늘도 경기 수원시 한 가구공장의 숨막힐 듯 비좁은 작업장에서 나무 먼지에 온몸이 시나브로 하얗게 묻혀가며 기계처럼 사포를 문지르고 있다.
그는 환기도 되지 않는 공간에서 가구칠이 뿜어내는 유해 가스와 역겨운 냄새를 얇은 면마스크 한 장으로 막아내며 하루 10시간의 고된 노동을 견딘다.
“사포로 울퉁불퉁한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작업 중에 생긴 나무 먼지가 몸 안의 모든 구멍에 들어차 기관지는 물론 시력도 나빠졌습니다. 그나마 아직 월급은 제 때 나와 견딜만합니다.”
동료 한국인 노동자들이 힘들다는 이유로 외면한 가구 제작 공정의 마지막 단계를 도맡고 있는 존스씨는 그래도 만족해한다. 적은 돈이지만 다달이 고국의 부모님과 딸아이에게 부칠 수 있기 때문이다.
존스씨는 1998년 봄 ‘코리안 드림’을 찾아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한국 땅을 밟아 전북 익산의 한 재활용품 공장에 취직했다.
하루 14시간의 살인적인 노동과 온갖 욕설이 난무하는 비인간적인 대우를 참다 못해 9개월 만에 직장을 뛰쳐 나왔다.
그는 “월급 60만원 중 15만원의 강제적립금과 식대 및 기숙사비를 빼면 손에 쥐는 돈은 몇 만원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불법체류자 신세가 된 그는 같이 와 있던 필리핀인 아내가 직장에서 쫓겨나고 99년 아이까지 낳으면서 더욱 생활이 힘들어졌다.
존스씨는 가장 겁내는 것은 작업 중 당할지 모르는 불의의 사고. 얼마 전 필리핀인 동료가 가구에 깔린 한국인 동료를 구하려다 허리를 다쳤는데 업주는 한국인 직원에게만 치료비를 지불했다.
“일단 다치거나 병에 걸리면 고생해서 모아뒀던 돈마저 모두 날리게 됩니다.”
두달 전 현재의 직장을 얻은 존스씨는 아내까지 근처 전자부품 공장에 취직해 “남부러울 것이 없다”고 기뻐한다.
법정 근로 시간을 초과하는 작업량과 자신을 분풀이 대상으로 삼는 한국인 동료들의 행패가 여전하지만 직장은 이들 부부에게 ‘코리안 드림’ 그 자체다.
“고국에 있는 세살박이 딸이 자꾸 눈에 밟혀 힘들다”는 존스씨는 ‘불법체류자’라는 꼬리표를 떼는 게 꿈이다.
그는 “떳떳하게 일한 대가를 세금으로 내고 영주권을 받아 자유롭게 고국을 왕래하고 싶다”고 소망했다.
하지만 존스씨는 25일부터 실시된 불법체류 자진신고가 마음에 걸린다. 노동자의 사진은 물론 주소와 연락처까지 기재해야 하는 신청서가 강제 추방의 도구로 악용될 것 같아서다.
“한국인이 꺼리는 3D 업종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꼭 강제 추방 시켜야 하나요. 한국은 제 삶의 터전이기도 합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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