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원 청와대 외교안보통일특보가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평양에 간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그는 남한의 공개 된 첫 대북 특사다.특사(Special Envoy)는 최고 통치권자가 통치권 차원에서 특수 목적을 위해 보내는 사절로 밀사(Emissary)와 달리 투명성을 우선 한다.
밀사는 비밀리에 보내는 사자로 무언가 음험한 냄새가 나지만 특사는 미리 알리고 보내기 때문에 당당함이 피부에 와 닿는다.
▦ 남북간에는 시대 상황에 따라 많은 사절이 오갔다.
1961년 5ㆍ16 군사 쿠데타가 성공하자 김일성이 박정희 장군의 형 친구인 황태성을 보내 대화를 시도 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황씨는 미국의 정보망에 걸렸고 간첩으로 몰려 처형 당했지만 일종의 밀사였다. 이후에도 남북간에는 밀사가 제법 많았다.
이후락씨가 72년 몰래 김일성을 만나 7ㆍ4 남북공동성명에 합의했고 전두환 대통령때의 장세동 안기부장, 노태우 대통령때의 박철언 대통령 정책보좌관과 서동권 안기부장 등도 나중에 행적이 드러난 대북 밀사였다.
▦ 밀사가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역할을 한 경우는 많다. 최근의 가장 성공한 밀사는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의 중국 방문의 길을 열었던 헨리 키신저 박사 였을 것이다.
닉슨의 안보담당보좌관 이었던 키신저는 중국에 잠행해 미ㆍ중국 화해를 디자인,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 놓았다.
닉슨과 키신저를 합성한 ‘닉신저’라는 신조어가 등장했고 닉신저는 데탕트(긴장완화)라는 새 국제질서를 탄생시켰다.
▦ 남북의 공인된 최초의 특사는 아이로니컬 하게도 북한의 김용순 노동당 중앙위 비서다.
2000년 9월 추석 때 송이버섯을 가지고 서울에 온 그는 김정일 특사 자격으로 남북간 주요 현안을 논의했다.
임동원 특사의 방북은 남북 양측이 이례적으로 동시에 발표 했다. 절차의 투명성은 확보 된 셈이다. 문제는 내용의 투명성이다.
특사는 밀사와 달리, 미리 예고하고 가기 때문에 모든 게 투명해야 한다. 임 특사의 성공 여부도 투명성 확보에 달려 있다.
이병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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