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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리그전과 토너먼트전

입력
2002.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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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경기에는 리그(league)전과 토너먼트(tournament)전이 있다.예컨대 32팀이 출전하는 야구대회에서 리그전으로 우승팀을 가린다고 하면 한 팀이 31번의 경기를 치러야 한다.

경기가 모두 끝난 뒤 가장 높은 승률을 보인 팀이 우승의 영광을 차지한다.

이에 비해 토너먼트전은 한번 패하는 게 곧 탈락이기 때문에 우승팀이라 해도 겨우 5번의 경기만 이기면 된다.

전체적으로 치러지는 경기의 수도 적고 우승팀의 향방도 짧은 시간에 결판난다.

리그전에서 우승하려면 어떤 팀이 유리할까. 무엇보다 선수층이 두꺼워야 한다.

오랜 기간 동안 많은 경기를 치르다 생긴 부상자나 슬럼프에 빠진 선수를 바꿔주기도 해야 할 것이다.

반면, 토너먼트전에서 이기려면 가령 야구의 경우 ‘똘똘한 친구’ 9명만 있으면 된다.

단기간에 우승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괜히 팀의 몸집을 불리는 것보다는 소수의 인원이라도 한번에 이를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리그전과 토너먼트전의 차이는 대통령 선거를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우리 정치에 있어서 리그전에 강했던 정치인을 꼽으라면 단연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다.

오랜 세월, 숱한 역경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경기를 치르고 끝내 우승의 영광을 맛본 사람들이다.

물론 두 사람을 따르고 지지하는 세력이 항상 버팀목이 되었기에 간혹 단기전에서 실패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성공했다.

총과 돈을 동원해 초대형의 팀을 억지로 구성함으로써 권력을 장악했던 몇몇 군인 출신 대통령도 굳이 따지자면 이 부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건국 이후 수 십년 간 있어온 대선은 리그전에 가까웠다. 한동안 예외는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대통령을 뽑아왔다.

하지만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사람과 유권자인 국민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었다.

바로 ‘정보의 장벽’이다.

TV매체가 대선의 결정적 변수로 등장하기 전까지 유권자가 대선 후보를 보는 것은 ‘간접적 경로’에 의한 것이었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등에 관해서는 신문이 걸러준 것을 읽었고 다른 정치인이 평가하는 것을 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신문이 잘 써주고 또 많은 정치인이 지지하는 사람이 곧 ‘유력한 대통령감’이 되었다. 유권자가 자기 마음에 드는 후보를 직접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고 대선의 성격도 점차 토너먼트전을 닮아가고 있다.

빌 클린턴이란 무명의 인사가 조지 부시를 꺾고 대통령이 된 것은 토너먼트형 대선의 전형적인 예다.

유권자가 TV를 통해 대선 후보를 보게 되면서 ‘갑자기 뜨는 사람’이 생겨난 것이다.

1997년의 이인제 후보가 바로 그런 경우다.

당시 여권의 대부분 정치인은 ‘젊은 후보론’과 함께 이인제 후보의 가능성이 거론될 때마다 “에이, 무슨 그런 사람이…”라며 고개를 저었었다.

하지만 경선이 시작되고 나니 이상하게 이인제 후보가 떴다.

이번 16대 대선전에서도 노무현 후보가 바람을 일으킬 것을 예측한 사람도 없었고 지금도 그가 왜 뜨고 있는지 설만 분분할 할 뿐이다.

사실 그 해답은 간단하다. 일반 국민이 노무현 후보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좀 심하게 말해 어떤 가수가 히트곡을 낼지 미리 알기 어렵지만 한번 히트하면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리는 것과 같다. 그냥 인기가 있어서 그런 것이다.

그래서 경선과 본선 두 게임만 이기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더 이상 대규모의 팀도, 대세몰이도 필요 없고 오직 국민에게만 어필하면 ‘소수정예’로서 승부를 겨뤄볼 만한 게 토너먼트형 대선이다.

이번 대선에서 소위 ‘대세론’을 앞세운 사람들이 한결같이 고전하고 있는 것은 달라진 대선의 성격을 미처 깨닫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리 대선은 아직 리그전과 토너먼트전의 성격이 혼합돼있기에 대세몰이도 해야 하고 또 히트곡도 내야 하니 더 힘들고, 그만큼 누가 될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선판도가 아주 빠른 속도로 토너먼트형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재민 논설위원

jm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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